국민대표회의 결렬
임시정부를 개조하자는 안창호 중심의 개조파와, 임정을 해체하고 새 정부를 세우자는 신채호·문창범 중심의 창조파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개조파가 5월부터 회의를 떠나고, 창조파는 6월 독자적으로 새 국호 "한(韓)"을 정했으나 소련의 불허로 무산됐다. 1920년대 최대의 통합 시도는 6개월 만에 결렬됐고, 독립운동 세력은 더 깊이 갈라졌다. 임시정부는 이후 침체기로 접어든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국민대표회의
- 우리역사넷 삼방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