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개조·창조 논쟁의 시작

1921년 1월 · 상하이

이동휘 사임과 워싱턴 회의 실패로 임시정부의 권위가 흔들리자, 임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그대로 유지하자는 옹호파, 조직을 뜯어고치자는 개조파(안창호), 아예 새 정부를 세우자는 창조파(신채호·박용만)로 갈렸다. 이 논쟁은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정점에 이른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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