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하야와 민씨 척족의 부상

1876년 · 한성 (운현궁)

1863년 어린 고종을 대신해 섭정에 오른 흥선대원군은 10년 동안 강력한 쇄국 정책과 경복궁 중건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원납전 강제 징수와 당백전 발행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1873년 유생 최익현이 대원군의 실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성년이 된 고종은 이를 계기로 친정을 선포했고, 대원군은 운현궁으로 물러났다. 권력의 빈자리는 곧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의 친정, 민씨 일족이 채웠다. 민승호를 비롯한 민씨 척족이 빠르게 요직을 장악하면서, 조선의 권력 구도는 "대원군의 쇄국"에서 "민씨의 척족 정치"로 넘어갔다. 강화도조약으로 나라의 문이 열리기 직전, 궁궐 안에서는 이미 다른 종류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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