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열세 편에서 우리는 제국을 밖에서 보았습니다. 이 편은 안에서 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실패가 모두 가능합니다 — 분노가 서술을 대신하거나, 균형을 핑계로 사실이 흐려지거나. 어느 쪽도 하지 않았습니다.
확정된 사실의 부정에는 중립하지 않습니다.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난징에서의 대규모 학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사료로 확립된 사실입니다. 「양쪽 주장이 있다」고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희생자 수처럼 추정 폭이 큰 수치는 범위와 그 편차의 이유를 밝히고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스만 편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적용한 원칙과 같으며, 그 원칙은 상대를 가려서 쓸 수 없습니다.
동시에 「악한 민족」의 서사는 쓰지 않습니다. 제국을 만든 것은 제도와 선택이었고, 그 안에서 반대한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시리즈 원칙은 여기서도 같습니다 — 제국은 주인공이되 영웅도 괴물도 아닙니다. 그리고 저항도 협력도 함께 적었습니다. 약소국 서사도, 과장된 자주 서사도 쓰지 않는 것이 이 시리즈의 방식입니다.
※ 제국 자체는 1945년에 끝납니다. 마지막 시점은 그 뒤에 남은 문제를 봅니다.
좌표와 반경은 개형(槪形)입니다. 현직 정치인의 이름은 쓰지 않았고, 진행 중인 외교 사안은 사실관계까지만 적었습니다.
1853년 검은 배 앞에서 영사재판권과 관세자주권을 내준 나라가, 23년 뒤 강화도에서 같은 형식의 조약을 조선에 강요했습니다. 러시아 편에서도 우리는 같은 구조를 보았습니다 — 몽골에 세금을 바치던 공국이 벗어난 뒤 자신을 지배하던 칸국의 조각들을 삼켰습니다.
당한 경험이 있는 나라가 같은 일을 할 때, 그 경험은 자제의 근거가 될까요, 정당화의 근거가 될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도 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