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도는 이어지지 않는 조각들의 집합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오류가 아니라 이 제국의 형태입니다. 부르고뉴·스페인·보헤미아· 헝가리가 모두 혼인과 상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복으로 만든 제국과는 다른 형태이며, 그 차이가 이 편의 전부입니다.
1526년과 1556년 시점에서 스페인 갈래를 다른 색으로 표시했습니다. 같은 가문의 두 갈래가 한때 한 사람 아래 있다가 갈라지는 과정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 상속으로 모은 것은 상속으로 갈라집니다. 1740년의 계승 위기와 1918년의 해체가 모두 같은 구조에서 나왔습니다.
다민족 제국을 「감옥」으로도 「공존의 모범」으로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언어도 인구의 절반을 넘지 않았고, 1867년 대타협은 두 민족의 합의였으며 나머지는 그 밖에 남았습니다. 자치를 얻은 쪽이 다른 집단에게 같은 것을 주지 않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좌표와 반경은 개형(槪形)입니다. 30년전쟁의 인구 감소처럼 추정 폭이 큰 수치는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제국이 해체되면서 「민족자결」이라는 원칙이 전후 처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말은 곧 전 세계로 퍼졌고, 1919년 한반도에서도 큰 기대를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그 원칙은 무너진 제국의 유럽 영토에 주로 적용되었고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 대영제국이 최대 판도에 이른 해가 바로 1919년입니다.
그런데 적용되지 않은 그 원칙이 이후 적용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어떤 원칙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보다 멀리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원칙의 주인을 누구라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