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이란 혁명 — 같은 해, 두 정권이 무너졌다

1979 · 이란 테헤란

**무엇이 일어났나.** 1979년 이란에서 팔레비 왕정이 무너졌다. 왕은 석유 수입으로 급속한 서구화와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그 과정에서 농촌이 해체되고 도시 빈민이 늘었으며 비밀경찰이 반대를 억눌렀다. 저항은 좌파·자유주의자·성직자의 연합으로 시작되었고, 왕이 떠난 뒤 권력은 호메이니 쪽으로 수렴한다.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졌다.\n\n이 혁명이 특별한 이유는 방향이다. 그때까지의 혁명은 대체로 더 세속적이고 더 서구적인 방향으로 갔다. 이란은 반대로 갔다. 혁명이 반드시 서구식 공화정을 향하는 것은 아니며, 근대화 자체가 저항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n\n**그때 한반도는.** 1979년 한국에서도 정권이 무너졌다. 8월 YH무역 사건, 10월 김영삼 의원직 제명에 이은 부마항쟁,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12월 12일 신군부의 쿠데타. 한 해 안에 일어난 일이다.\n\n**도착하기까지 — 같은 해.** 이 편에서 시차가 0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한 동시성이 아니라 같은 사슬로 이어진 사건이다.\n\n이란 혁명으로 석유 생산이 급감하면서 2차 오일쇼크가 왔다. 유가가 크게 뛰었고, 중화학공업 투자로 이미 과열되어 있던 한국 경제가 직격당했다. 물가가 치솟고 기업 부실이 드러났으며, 1980년 한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다. 부마항쟁의 배경에 이 경제 악화가 있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n\n반대 방향의 영향도 있었다. 1970년대 한국 건설업체들이 중동에 대거 진출해 벌어들인 외화가 경제의 주요 축이었는데, 중동 정세가 흔들리자 그 구조도 함께 흔들렸다.\n\n즉 테헤란의 왕정 붕괴와 서울의 유신 붕괴는 같은 해에 일어난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석유라는 사슬로 이어진 사건이다. 세계와 한반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지점이 여기다.\n\n**남은 질문.** 두 나라의 그 뒤는 갈렸다. 이란에서는 왕을 몰아낸 자리에 또 하나의 절대 권력이 들어섰다. 한국에서는 유신이 끝난 자리에 신군부가 들어섰고, 이듬해 광주에서 시민들이 학살당했다. 양쪽 모두 독재가 무너진 자리에 곧바로 민주주의가 오지 않았다.\n\n다른 것은 그다음이다. 한국은 7년 뒤 다시 광장에 나가 직선제를 얻어냈다.\n\n**세계사적으로는** 종교가 근대 국가의 통치 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중동 질서를 재편했으며, 이후 40년 넘게 이어지는 국제적 대립 구도의 출발점이 되었다.\n\n왕을 몰아낸 뒤 세워진 것이 또 하나의 절대 권력이었다면, 이 사건의 이름은 여전히 혁명인가? 그리고 독재가 무너진 자리를 누가 채우는지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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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혁명, 그때 우리는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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