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1989 — 세 개의 광장, 갈린 결말

1989 · 독일 베를린 · 중국 베이징 · 대한민국 서울

**무엇이 일어났나.** 1989년 한 해에 동유럽 전역에서 공산 정권이 무너졌다. 폴란드에서 자유선거가 치러졌고,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열었으며,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대부분 큰 유혈 없이 진행되었다. 2년 뒤 소련이 해체된다.\n\n같은 해 6월 4일 베이징에서는 군이 광장에 투입되었다.\n\n**세 개의 광장.** 이 편은 세 도시를 나란히 놓는다.\n\n**서울, 1987.** 박종철 고문치사와 4·13 호헌조치, 이한열 피격을 거쳐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다. 요구가 제도로 관철되었다.\n\n**베이징, 1989.** 요구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패 척결과 언론 자유였고 체제 전복이 아니었다. 진압되었다.\n\n**베를린, 1989.** 체제 자체가 무너졌다.\n\n왜 갈렸는가. 몇 가지가 지적된다. 동유럽에서는 소련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이미 보냈고, 중국에는 그런 외부 제약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해 올림픽을 앞둔 국제적 시선과 미국의 압력이 작용했고, 무엇보다 야당과 재야, 넥타이 부대라 불린 도시 중산층이 결합해 정권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를 만들었다. 반대로 베이징에서는 학생과 노동자의 결합이 충분히 진행되기 전에 진압이 왔다.\n\n다만 이 설명들이 사후적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1989년 6월 이전에 어느 광장이 이기고 어느 광장이 질지 확신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n\n**그때 한반도는 — 동시.** 시차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2년 앞섰다.\n\n그리고 냉전의 해체는 한반도에 곧바로 도착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로 1990년 한·소 수교,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다. 반면 북한은 반대 방향으로 갔다 — 소련과 동유럽의 지원이 끊기면서 경제가 무너졌고,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으로 이어진다. 같은 사건이 남과 북에 정반대로 도착한 것이다.\n\n**세계사적으로는** 냉전이 끝났다. 그리고 두 갈래가 남았다. 하나는 동유럽의 길 — 정치를 열고 경제도 열었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길 — 경제만 열고 정치는 닫았다. 1989년에 갈린 이 두 길은 이후 30여 년 세계의 기본 구도가 된다.\n\n**시리즈를 닫으며.** 열두 편의 시차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선이 보인다. 명예혁명 200년, 미국 독립 106년, 프랑스 130년, 아이티 도착하지 않음, 1848년 70년, 메이지 8년, 신해혁명 동시, 러시아 2년, 중국 즉시, 이란 같은 해, 1989년 동시. 세계와 이 땅이 연결되는 속도 자체가 역사였다.\n\n그리고 마지막 칸은 아직 비어 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들은 세계 어디에 어떤 속도로 도착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광장을 물려받았고,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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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혁명, 그때 우리는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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