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는 장수가 아니라 칼 쓰는 법 자체를 다룬다. 칼을 배우고, 가르치고, 그것을 책으로 남긴 사람들이다. 그 첫머리에 한교가 있다. 그는 전쟁터의 영웅이 아니라 묻는 사람이었다.
칼을 쓸 줄 모르는 군대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조선군의 주력은 활이었다. 멀리서 쏘는 데는 강했지만, 일본군이 칼을 들고 가까이 붙으면 버티지 못했다.
명나라 군대가 들어오고 평양을 되찾은 뒤, 조선은 명나라 군사들이 싸우는 법을 눈여겨보았다. 그들은 척계광이라는 장수가 쓴 병서 『기효신서』에 따라 창과 방패와 긴 칼을 함께 쓰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일본의 해적을 상대하려고 만든 싸움법이었다.
조선은 새 군영 훈련도감을 세웠다. 포를 쏘는 포수, 활을 쏘는 사수, 그리고 칼과 창으로 싸우는 살수를 따로 길렀다. 문제는 살수에게 가르칠 칼 쓰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묻는 사람
한교는 이이와 성혼에게 배운 선비였다. 전쟁이 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유성룡의 추천으로 훈련도감의 낭관이 되었다.
그가 맡은 일은 『기효신서』를 풀어 조선 군사에게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에 그려진 동작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았다. 한교는 명나라 진영을 자주 드나들며 장수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창은 어떻게 잡는지, 방패는 어떻게 드는지, 이 동작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지.
뒷날 정조는 이 일을 이렇게 적었다. 「선조께서 왜구를 평정하신 뒤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구하여, 훈련도감 낭관 한교를 보내 동쪽으로 온 장수들에게 두루 묻게 하시고, 곤봉 등 여섯 가지 기예를 풀이해 그림으로 엮게 하셨다.」
무예제보
그렇게 해서 1598년 『무예제보』가 나왔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무예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여섯 가지 기예가 실렸다. 긴 몽둥이인 곤봉, 방패인 등패, 가지 달린 대나무 창인 낭선, 긴 창, 세 갈래 창인 당파, 그리고 긴 칼이다. 배우는 순서대로 동작을 늘어놓았고, 글을 모르는 군사도 볼 수 있게 우리말 풀이를 붙였다.
책을 쓴 한교 자신이 칼의 달인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칼을 쓰는 사람과 배우려는 사람 사이에 섰다. 남의 나라 군대의 기술을 묻고 받아 적고 그림으로 옮겼다.
그다음 사람들
그로부터 12년 뒤 훈련도감의 최기남이 『무예제보』에 빠진 것을 보태어 『무예제보번역속집』을 엮었다. 여기에는 맨손 무예인 권법, 청룡언월도, 쌍검, 그리고 일본의 칼 쓰는 법인 왜검이 들어갔다. 이 왜검은 전쟁 중에 조선에 투항한 일본인들이 가르친 것에서 나왔다.
적의 칼을 배우는 일은 다음 편의 김체건에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교는 그 뒤 인조반정에 참여해 공신이 되었고, 아차산 아래 광나루에서 말년을 보냈다.
이 이야기의 근거
관찬 문헌과 정사. 한교의 행적은 선조·인조실록과 유성룡의 『서애집』 등에 기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정리를, 편찬 경위는 『무예도보통지』의 정조 어제서와 「병기총서」를 따랐다. 『무예제보』의 완성 연도는 자료마다 1594년과 1598년으로 다르게 적히는데, 1598년이 일반적이다.
가장 강한 칼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칼 쓰는 법을 묻고 적은 사람이 무예의 역사를 시작했다. 기술은 몸에 있을 때와 책에 있을 때 어떻게 다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