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에서 열다섯 살 적장의 투구가 떨어진 순간, 화살을 쏘아 그를 죽인 사람이 이두란이다. 뒤에 이지란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앞의 편이 이성계의 화살 이야기였다면, 이 편은 그 옆에 늘 함께 있던 또 하나의 활 이야기다.
여진에서 온 사람
이지란은 여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함경남도 북청인 청해 사람이고, 본래 성은 퉁(佟)이었다. 공민왕 때 무리를 이끌고 고려로 들어왔고, 이성계를 만나 의형제가 되었다. 이성계보다 네 살 아래였다고 전한다.
그는 이성계에게서 이씨 성을 받았다고 전한다. 고려 사람이 된 여진 무사가 조선을 세우는 사람의 가장 가까운 활이 된 것이다.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재주
태조실록 총서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사냥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사슴을 쫓던 어느 날, 이성계의 활 솜씨를 본 이지란이 말했다고 한다.
"공의 재주는 하늘이 내린 것이라 사람의 힘으로 미칠 바가 아닙니다."
명궁이 명궁을 알아본 말이다.
상복을 벗다
우왕 때 왜구와 여진이 북쪽을 어지럽혔다. 그때 이지란은 어머니 상을 당해 청주에 있었다.
이성계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다. 총서는 그다음을 이렇게 적는다.
「두란이 상복을 벗고 절하며 곡하여 하늘에 고한 다음, 활과 화살을 차고 따라나섰다.」
부모의 상중에 상복을 벗는 것은 큰일이었다. 그는 하늘에 먼저 고하고 나서 활을 찼다.
이 싸움에서 그는 이성계의 편장으로 나섰다. 적장과 맞선 이성계에게 그가 다급히 외친 말도 총서에 남아 있다. "영공, 뒤를 보시오. 영공, 뒤를 보시오."
황산의 화살
황산에서 이성계가 투구 꼭지를 쏘아 떨어뜨렸을 때, 적장을 쏘아 죽인 것은 이지란이었다. 총서는 그 순간을 짧게 적었다. 「두란이 곧 쏘아 죽였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의 몫은 분명히 나뉜다. 한 사람은 길을 열었고, 한 사람은 끝을 냈다.
새 나라의 공신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릴 때 이지란의 아들도 이성계의 진영으로 달려왔다. 조선이 서자 이지란은 개국공신 1등에 올랐다. 그는 태종 때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양렬이다.
이 이야기의 근거
정사. 태조실록 총서에 이두란의 활과 행적이 여러 번 나온다. 그의 출신과 귀화, 개국공신 책봉, 죽음은 태조·태종실록과 뒷날의 신도비 등에 전한다. 이 편에서 태종실록의 졸기 원문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 새 나라를 세우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섰다. 그는 고려 사람이었을까, 여진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조선 사람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