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식 — 정사에 이름이 없는 장군, 그는 언제 어떻게 되살아났나

598 6월 · 요서 · 임유관 (지금의 산해관 부근)

짙은 안개 속에 흐릿하게 사라지는 고구려 장수의 실루엣, 멀리 폭풍에 부서지는 수나라 배들
AI 재현 실제 사진이 아니라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해 그린 그림

수나라 군대 30만을 물리친 고구려의 장군. 인터넷에서 강이식은 이렇게 소개된다. 사당이 있고, 해마다 제사가 열린다.

그런데 이 장군은 삼국사기에 이름이 없다. 중국의 수서에도 없다. 이 편은 무력보다 기록 이야기를 해야 하는 편이다.

정사에 있는 것

먼저 정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보자.

삼국사기 영양왕 9년(598) 기사는 이렇다.

왕이 말갈 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를 쳤다. 수나라 영주총관 위충이 물리쳤다. 수 문제가 크게 화를 내며 한왕 양량과 왕세적을 원수로 삼아 바다와 육지로 30만 군사를 보냈다.

수나라 육군은 임유관을 나섰는데 큰물을 만나 군량 수송이 끊겼고, 군중에 먹을 것이 떨어진 데다 전염병까지 돌았다. 바다로 평양성을 향하던 수군은 풍랑을 만나 배가 많이 떠내려가 가라앉았다.

가을 9월 수나라 군대가 돌아갔다. 죽은 자가 열에 여덟아홉이었다.

그리고 한 줄이 더 있다. 고구려 왕도 두려워 사신을 보내 사죄했고, 표문에서 자기를 「요동의 분토신」이라고 낮추었다. 수 문제는 이에 군사를 거두었다.

수서 고구려전도 같은 흐름이다. 두 책 어디에도 강이식은 없다. 요서를 먼저 친 사람은 장군이 아니라 왕 자신으로 적혀 있다. 수나라 군대가 무너진 까닭은 큰물과 굶주림과 병과 풍랑이다.

강이식은 어디서 나왔나

강이식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자리 잡은 것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다. 1931년 신문에 연재되고, 1948년 책으로 나왔다.

신채호는 이렇게 쓴다. 수 문제가 모욕적인 글을 보내자 강이식이 말했다. "이같이 오만무례한 글은 붓으로 회답할 것이 아니요 칼로 회답할 것입니다." 왕은 그를 병마원수로 삼아 정병 5만을 주었다. 강이식은 바다에서 수나라 배를 깨뜨렸고, 장마와 굶주림에 물러가는 수나라 군대를 뒤쫓아 거의 다 없앴다.

신채호는 자기가 기댄 책도 밝혔다. 『서곽잡록』과 『대동운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삼국사기에 강이식이 없는 것은 수서만 베꼈기 때문이다. 수서가 패배를 장마 탓으로 돌린 것은 중국의 체면을 지키려 치욕을 감춘 것이다.

신채호가 든 두 책의 사정

『서곽잡록』이라는 이름의 책은 실제로 남아 있다. 조선 후기의 야사집이다. 다만 남아 있는 책에 강이식 이야기가 실려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동운해』는 어떤 책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신채호 스스로 적었듯 두 책은 강이식을 서로 다른 전쟁의 장수로 적었다.

또 하나의 근거는 진주 강씨 집안의 족보다. 강씨 문중은 강이식을 시조로 모신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이른 족보는 17세기 후반의 것이다. 강이식이 살았다는 때로부터 천 년도 더 지난 뒤다.

「병마원수」라는 벼슬 이름도 문제로 꼽힌다. 이런 이름은 고구려 때가 아니라 훨씬 뒤에야 쓰였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럼 가짜인가

여기서 서둘러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정사에 없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었다는 기록 뒤에 실제로 싸운 장수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강이식의 무용담, 곧 칼로 회답하겠다는 대사와 수나라 수군을 격파하고 추격해 섬멸한 장면은 정사에는 없고, 근대의 저술과 족보에서만 확인된다.

신채호가 이 글을 쓴 것은 나라를 잃은 지 스무 해가 지난 때였다. 그는 중국 사서가 감춘 고구려의 승리를 되찾고 싶었다.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이 기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시리즈가 근거를 맨 앞에 두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의 근거

후대 기록. 삼국사기 영양왕 9년과 수서 고구려전에는 598년의 전쟁만 있고 강이식의 이름은 없다. 강이식의 행적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진주 강씨 족보로만 전한다. 신채호가 근거로 든 『서곽잡록』『대동운해』의 해당 기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실존 여부와 행적의 사실성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적는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제사 지내는 장군이 정사에는 없다면, 그 장군은 어디에 살아 있는 것일까. 기록이 없는 자리를 채우고 싶은 마음은 역사를 지키는 것일까, 바꾸는 것일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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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역사 속 소드마스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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