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중성은 지금의 경기도 파주 적성면, 임진강을 내려다보는 중성산에 있던 성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성 가운데 지금 위치가 분명한 몇 안 되는 곳이다. 고구려와 신라가 오래 다툰 길목이었다.
태종무열왕은 고구려와 백제와 말갈이 서로 손을 잡아 신라를 노린다고 보았다. 그래서 충성스럽고 용감해 막아 낼 사람을 찾았고, 사량부 사람 필부를 칠중성 아래 고을의 현령으로 보냈다.
스무 날을 버티다
그 이듬해 가을, 신라는 당나라와 함께 백제를 무너뜨렸다. 그러자 고구려가 신라를 미워하여, 겨울 10월에 군사를 보내 칠중성을 에워쌌다.
필부는 성을 지키며 스무 날 넘게 싸웠다. 고구려 장수는 성안 병사들이 정성을 다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쉽게 떨어뜨릴 수 없다고 여겨 군사를 돌리려 했다.
성안의 배신자
그때 성안에서 배신자가 나왔다. 대나마 비삽이 몰래 사람을 보내 고구려군에 알렸다.
"성안에 식량이 떨어지고 힘이 다했습니다. 지금 치면 반드시 항복할 것입니다."
고구려군은 돌아가려다 다시 싸움을 걸어왔다.
필부가 그것을 알았다. 그는 칼을 뽑아 비삽의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성 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말했다.
"충신과 의사는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힘써라. 이 성이 남느냐 무너지느냐는 이 한 번의 싸움에 달렸다."
열전은 그다음을 이렇게 적는다. 「주먹을 휘두르며 한 번 외치자 병든 사람까지 모두 일어나 다투어 성벽에 올랐다.」
불과 화살
그러나 군사들은 이미 지쳐 있었고, 죽거나 다친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고구려군은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성으로 쳐들어왔다.
필부는 본숙, 모지, 미제 같은 사람들과 함께 적을 향해 활을 쏘았다. 날아오는 화살이 비 오듯 했다. 몸이 뚫리고 찢어져 피가 발꿈치까지 흘렀다. 그는 마침내 쓰러져 죽었다.
왕은 소식을 듣고 몹시 슬피 울었고, 그에게 급찬 벼슬을 내렸다.
이 이야기에서 칼이 나오는 장면은 단 한 번이다. 적이 아니라 성안의 배신자를 벤 칼이다. 필부가 싸운 무기는 마지막까지 활이었다.
칠중성의 그 뒤
칠중성은 이때 고구려 손에 넘어갔다. 고구려가 망할 때까지 고구려 땅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 뒤 나당전쟁 때 당나라 군대가 이 성을 다시 에워쌌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난 일도 있다. 같은 성벽에서 두 번 싸움이 있었던 셈이다.
이 이야기의 근거
정사. 삼국사기 열전 「필부」. 성의 위치는 파주 적성 중성산의 산성으로 비정이 분명한 편이다.
필부의 칼은 왜 적이 아니라 자기 편을 향해야 했을까.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성벽 밖의 적이었을까, 성벽 안의 말 한마디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