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동천왕 때 위나라 군대가 쳐들어왔다. 처음 두 번은 고구려가 이겼다. 왕은 기세가 올라 철갑 기병을 이끌고 직접 나갔다가 크게 졌다. 위나라 장수 관구검은 도읍 환도성을 무너뜨렸고, 다른 장수 왕기가 달아나는 왕을 뒤쫓았다.
왕은 남옥저 쪽으로 도망쳤다. 죽령이라는 고개에 이르렀을 때, 따르던 군사는 거의 다 흩어지고 없었다.
밀우 — 길을 막은 사람
곁에 남은 사람은 동부 출신의 밀우 하나였다. 삼국사기 열전은 그의 말을 이렇게 옮긴다.
"쫓는 군사가 너무 가까이 왔습니다. 이대로는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제가 죽기로 막겠으니 왕께서는 몸을 피하십시오."
밀우는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을 모아 적에게 달려들어 힘껏 싸웠다. 그사이 왕은 산골짜기로 숨어 흩어진 군사를 다시 모았다.
왕이 말했다. "밀우를 데려오는 사람에게 큰 상을 주겠다."
하부의 유옥구라는 사람이 나섰다. 그가 가 보니 밀우는 땅에 엎드려 있었다. 유옥구는 그를 업고 돌아왔다. 왕은 밀우를 자기 무릎에 눕혔다. 한참이 지나서야 밀우가 깨어났다.
유유 — 그릇 속의 칼
쫓기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남옥저에 이르러 왕은 꾀도 힘도 다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번에는 동부의 유유가 나섰다.
"저에게 어리석은 꾀가 하나 있습니다. 음식을 가지고 가서 위나라 군사를 위로하는 척하다가, 틈을 보아 적장을 찔러 죽이겠습니다."
유유는 위나라 진영에 가서 항복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우리 임금이 큰 나라에 죄를 짓고 바닷가까지 도망쳐 와서 몸 둘 곳이 없습니다."
그는 칼을 음식 그릇 속에 숨기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 칼을 뽑아 위나라 장수의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장수와 함께 죽었다.
장수를 잃은 위나라 군사는 어지러워졌다. 왕은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급히 쳤다. 위나라 군사는 진을 치지도 못하고 낙랑 쪽으로 물러갔다.
싸움이 끝나고
왕은 공을 따지며 밀우와 유유를 첫째로 꼽았다. 밀우에게는 땅을 주었고, 그를 업어 온 유옥구에게도 땅을 주었다. 죽은 유유에게는 벼슬을 내리고 그 아들을 높은 자리에 앉혔다.
이 싸움은 칼 솜씨를 자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은 몸으로 길을 막았고, 한 사람은 목숨을 걸고 단 한 번 칼을 썼다. 그런데 그 한 번이 전쟁의 방향을 바꾸었다.
엇갈리는 기록
이 전쟁이 언제 있었는지는 기록마다 다르다. 삼국사기는 동천왕 20년, 곧 246년 한 해의 일로 적는다. 중국 쪽 기록인 삼국지의 관구검전은 244년과 245년 두 번에 걸친 전쟁으로 적는다.
끝도 다르게 적혔다. 삼국사기는 위나라 군대가 물러갔다고 적는다. 중국 쪽 기록은 위나라 장수가 동쪽 끝까지 가서 돌에 공을 새기고 돌아왔다고 적는다. 실제로 1906년 지금의 중국 지안 근처에서 관구검의 공을 새긴 비석 조각이 발견되었다.
같은 전쟁을 두 나라가 각자 이긴 쪽의 눈으로 적은 셈이다. 밀우와 유유의 이야기는 고구려 쪽 기록에만 있다.
이 이야기의 근거
정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0년과 열전 「밀우·유유」. 열전 한 편에 두 사람이 함께 실려 있다. 연도와 전쟁 횟수는 중국 기록과 다르다.
유유의 칼은 무엇을 찌른 것이었을까. 적장 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이겼다고 믿고 있던 적의 방심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