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척준경을 검색하면 「고려의 소드마스터」라는 말이 따라 나온다. 판타지 소설에서 칼 하나로 군대를 상대하는 경지의 검사를 부르는 말이다. 늦어도 2010년대 중반에는 이 별명이 사람들 사이에 돌고 있었다.
재미있는 별명이다. 그런데 이 별명을 따라 역사책을 펴 보면 곧 이상한 점이 보인다.
장군은 많은데, 싸우는 장면은 드물다
우리 역사에 이름난 장군은 많다.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그런데 이 분들은 대개 군대를 움직인 사람들이다. 기록이 남긴 것도 작전과 결과다. 그 사람이 칼을 어떻게 휘둘렀는지, 활을 몇 번 쏘았는지는 거의 적혀 있지 않다.
혼자 적진에 뛰어든 장면, 칼을 뽑아 몇 사람을 벤 장면,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버틴 장면. 이런 장면이 기록에 또렷이 남은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이 시리즈는 그 적은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지휘를 잘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싸운 장면이 기록에 남은 사람들이다.
기록의 무게는 다 다르다
무력에 관한 이야기는 유난히 부풀기 쉽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이야기마다 그 장면이 어디에 적혀 있는지를 먼저 밝힌다. 네 가지로 나눈다.
정사 — 나라가 엮은 역사책이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이다. 이것도 쓴 사람의 눈이 들어가 있지만, 가장 먼저 기댈 자리다.
개인 기록 — 문집, 집안이 엮은 실기, 개인이 쓴 전기다. 생생하지만 그 사람을 높이려는 마음이 섞이기 쉽다.
야담·구전 — 입으로 전해지다 뒤에 글로 옮겨진 이야기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기억했는지를 보여 주지만, 있었던 일 그대로는 아니다.
후대 기록 — 수백 년 뒤의 족보, 소설, 근대의 저술이다. 앞의 세 가지에 없는 이야기가 여기서 처음 나오면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같은 사람에게 네 가지가 다 붙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장면마다 따로 적는다.
읽다 보면 보이는 흐름
이 시리즈를 쓰면서 한 가지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싸우다 죽은 사람의 장면이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대사까지 남아 있다. 김부식이 충성의 본보기로 이런 이야기를 일부러 모았기 때문이다.
고려사도 전투 장면이 꽤 자세하다.
그런데 조선으로 오면 실록은 담담해진다. 실록 속 장수는 보고서를 올리고 공을 다툰다. 그 대신 힘센 이야기는 야담에서 두꺼워진다. 실록에는 한 줄도 없는 호랑이 이야기가 마을마다 남는다.
칼 솜씨를 기록한 마지막 자리는 뜻밖에도 책이다. 조선 후기에는 칼 쓰는 법을 그림으로 그려 책으로 남긴 사람들이 나온다.
네 부로 나눈다
1부 삼국 —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열전. 그리고 정사에 이름이 없는 장군 하나.
2부 고려 — 거란과 여진과 몽골과 왜구 앞에서 몸으로 싸운 사람들.
3부 조선의 장수 — 실록과 야담 사이의 거리가 가장 먼 사람들.
4부 칼을 익힌 사람들 — 진짜 의미의 소드마스터. 칼 쓰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고, 책으로 남긴 사람들.
이 시리즈는 위인전이 아니다. 반란을 일으킨 사람도, 권력을 휘두른 사람도 같은 자리에 선다. 묻는 것은 하나다. 이 사람이 싸운 장면은 어디에, 누구의 손으로 적혔는가.
칼 한 자루의 기억은 누가 남기는 것일까. 싸운 사람일까, 그것을 본 사람일까, 아니면 그것을 듣고 옮긴 사람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