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순 — 명령서 위에 여섯 글자를 적은 경찰서장

1950 8월 · 제주 성산포경찰서

1950년 8월 30일, 제주 성산포경찰서에 공문 한 장이 도착했다. 발신은 해병대 정보참모 해군중령 김두찬. 제목은 예비구속자 총살집행 의뢰의 건. 내용은 짧았다. 계엄령 실시 이후 지금까지 귀서에 구속 중인 D급과 C급 가운데 아직 총살하지 않은 자를 총살한 뒤 그 결과를 9월 6일까지 육군본부 정보국 제주지구 CIC 대장에게 보고하라.

성산포경찰서장 문형순은 이 공문을 돌려보냈다. 그냥 무시한 것이 아니라, 성산포경찰서장 귀하라고 적힌 수신처 바로 위에 본문에 쓴 것보다 훨씬 굵은 펜으로 여섯 글자를 써넣었다.

부당함으로 불이행.

불이행의 행 자는 아래로 길게 그어져 있다. 도장까지 찍어 돌려보냈다. 그는 명령을 어겼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어겼다는 물증을 자기 손으로 남긴 셈이다. 그때 그의 나이 쉰셋이었고, 계급은 경감이었다. 계엄 아래에서 군의 지휘를 받는 경찰관이 군의 총살 명령에 문서로 거부를 적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가 몰랐을 리 없다.

이 사람의 이력을 알면 그 여섯 글자가 조금 더 이해된다. 문형순은 스물두 살 때부터 독립운동에 몸담았고 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을 거쳤다. 해방 뒤 2년이 지난 1947년에 경찰이 됐다. 4·3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9년에는 모슬포경찰서장이었는데, 좌익 혐의로 수많은 주민이 처형될 위기에 놓이자 이들에게 자수를 권했고 100여 명이 자수하자 전원 훈방했다. 모슬포 사람들은 지금도 그 일을 자수사건이라고 부른다.

그가 지킨 사람이 몇 명인지는 자료마다 다르다. 경찰청의 안장식 보도는 295명, 제주경찰청 흉상의 문구는 200여 명, 어떤 기사는 278명이라고 적는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이 있다. 이때 붙잡혀 있던 예비검속자에는 보도연맹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요시찰인으로 분류된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보도연맹원 몇백 명을 구했다고 단순하게 말하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제주 전체의 이야기는 아니다. 같은 8월, 모슬포 지역에서 예비검속된 사람들은 섯알오름에서 희생됐다. 성산포에서 섬 하나 건너편이다. 문형순이 돌려보낸 그 공문과 같은 계통의 명령이 다른 곳에서는 그대로 집행됐다.

문형순은 2018년 경찰영웅으로 선정됐고, 제주경찰청 본관 앞에 그의 흉상이 서 있다. 2020년에는 국립제주호국원에 안장됐다. 명령서 원본은 4·3평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다. 이 시리즈에 실린 자리 가운데 명령이 문서로 내려왔다는 증거와 그 명령을 거부했다는 증거가 같은 종이 한 장에 남아 있는 경우는 이것뿐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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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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