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 태우라고 한 시가 바다를 건넜다

1589 3월 · 강릉 · 한양

1563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초희, 호가 난설헌이다.

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 동생 허균까지 모두 문장으로 이름난 집안이었다.

배울 수 있었다

조선에서 여자가 글을 정식으로 배우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의 집은 달랐다. 오빠 허봉이 자기 친구인 이달에게 동생을 가르치게 했다. 이달은 당시 손꼽히는 시인이었고 서얼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드러났다. 여덟 살에 지었다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 전한다. 신선 세계의 누각을 짓는다는 상상의 글이다.

혼인 뒤

열다섯에 안동 김씨 김성립과 혼인했다.

결혼 생활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남편은 과거 공부를 이유로 밖으로 돌았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편치 않았다.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었다. 뱃속의 아이도 잃었다.

아버지가 객지에서 죽었고, 자신을 가르쳐준 오빠 허봉은 귀양 갔다가 병으로 죽었다.

몇 해 사이에 그런 일들이 이어졌다.

스물일곱

1589년, 스물일곱에 죽었다.

죽기 전에 자기가 쓴 글을 모두 태우라고 했다. 방 안에 쌓인 원고가 상당한 분량이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태워졌다.

남은 것

동생 허균이 자기가 따로 가지고 있던 것과 기억하고 있던 것을 모았다.

그렇게 엮인 것이 『난설헌집』이다. 1608년에 간행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이 조선을 넘어갔다.

허균이 명나라 사신에게 누이의 시를 보여주었고, 그것이 중국으로 건너가 시집으로 간행되었다. 중국 문인들 사이에서 크게 읽혔다.

뒤에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

조선에서보다 밖에서 먼저 인정받은 셈이다.

무엇을 썼나

남은 시에는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신선 세계를 노래한 것이다. 현실에 없는 곳, 여자가 자유롭게 노니는 세계를 그렸다.

다른 하나는 현실이다. 가난한 여자가 남을 위해 옷을 짓는 것을 노래한 시, 아이를 잃고 쓴 시가 있다.

아이를 묻은 시에서 그는 두 아이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보며, 밤마다 그 넋이 서로 만나 놀기를 바란다고 썼다.

남는 문제

『난설헌집』에 실린 작품 가운데 일부가 다른 사람의 시라는 지적이 조선 후기부터 있었다.

허균이 누이의 시를 모으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 혹은 의도적으로 보탰을 가능성이 논의되어 왔다.

확정된 결론은 없다.

본인이 태우라고 한 글을 동생이 모아서 냈고, 그 가운데 무엇이 정말 그의 것인지를 지금 우리가 완전히 가려낼 수 없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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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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