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3대 도적을 꼽을 때 홍길동, 임꺽정과 함께 들어가는 이름이다.
그리고 셋 가운데 유일하게 잡히지 않았다.
광대 출신
숙종실록에 그의 이름이 나온다.
기록은 그를 광대 출신이라 적었다. 재주가 뛰어나 관가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 광대가 무리를 이끄는 도적이 되었다.
황해도를 근거로 활동했고, 뒤에는 평안도 쪽으로 옮겨 다녔다. 관군이 여러 차례 추적했으나 번번이 놓쳤다.
1697년의 기록
숙종 23년, 이영창 등이 역모를 꾀했다는 사건이 있었다.
그 국문 과정에서 장길산의 이름이 나온다. 역모를 꾀한 자들이 장길산의 무리와 연결하려 했다는 진술이다.
숙종이 직접 명을 내려 반드시 잡으라고 했다. 상금이 걸렸고 병력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잡지 못했다.
실록은 그가 여러 해 동안 도망 다녔는데 끝내 잡을 수 없었다는 취지로 적었다.
그 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죽었다는 기록도 없고 다시 나타났다는 기록도 없다.
왜 잡히지 않았을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지역 사회의 협조다. 임꺽정 때와 같다. 관이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숨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광대였다는 점이다. 광대패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집단이고, 신분을 감추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드는 데 익숙했다.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것
장길산에 대한 기록은 홍길동이나 임꺽정보다 적다.
그가 무엇을 털었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는 자료가 거의 없다. 이름과 출신과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 남은 것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부족함이 오히려 이야기를 키웠다.
죽은 것을 확인하지 못한 사람은 계속 살아 있게 된다. 그가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고, 후대에는 그가 새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의 전승도 생겼다.
1974년부터 황석영이 소설 「장길산」을 연재했다. 십 년에 걸친 대하소설이다.
실록의 몇 줄이 소설 열 권이 되었다.
앞의 두 도적과 다른 점
홍길동은 잡혔고 임꺽정도 잡혔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장길산에게는 끝이 없다. 기록이 그냥 끊긴다.
이 시리즈가 다루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렇게 사라졌다. 다만 대부분은 죽어서 사라졌고, 이 사람은 잡히지 않은 채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