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 다섯 살의 천재가 미친 사람이 되기까지

1465 · 경주 금오산 · 부여 무량사

다섯 살에 이름이 났다. 세종이 그 소문을 듣고 궁으로 불러 시험했다.

아이가 글을 지어 보이자 세종이 비단을 내리고, 자라거든 크게 쓰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를 오세, 곧 다섯 살이라 불렀다.

스물한 살

1455년,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에게 서울에서 소식이 왔다.

수양대군이 조카의 자리를 빼앗아 왕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흘 동안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크게 울부짖은 뒤, 읽던 책을 모두 불태우고 머리를 깎았다.

스물한 살이었다. 그 뒤로 승려의 모습으로 평생을 떠돌았다.

생육신이라 불리는 여섯 사람 가운데 하나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과 달리, 살아서 벼슬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금오신화

서른한 살 무렵 경주 금오산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서 쓴 것이 『금오신화』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다뤄진다. 다섯 편이 전한다.

죽은 여자와 사랑하는 이야기, 저승에 다녀오는 이야기, 용궁에 초대받는 이야기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만나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왕위를 빼앗기고 죽은 어린 임금이 있던 시대에 쓰인 이야기들이다.

미친 사람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기이한 것이 많다.

길에서 만난 고관을 대놓고 조롱했다. 시를 지어 물에 띄워 보내고 울었다. 옷을 벗고 다니거나 오줌을 누며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흔일곱에 갑자기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혼인했다. 그러나 아내가 죽자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그를 두고 당대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그 자신도 그렇게 굴었다.

다만 그가 남긴 글은 미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시가 이천 수 넘게 남았고, 불교와 유교와 도교를 두루 논한 글이 있다.

미친 것과 미친 척하는 것 사이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무량사

1493년 부여 무량사에서 죽었다. 쉰아홉이었다.

죽으면서 화장하지 말라고 했다. 절 옆에 임시로 묻어두었다가 3년 뒤 정식으로 장사 지내려고 관을 열었는데, 얼굴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람들이 놀라 그를 부처라 여겼고, 그제야 화장해 부도를 세웠다.

이 이야기는 후대 기록에 실린 것이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붙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를 그냥 미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숙종 때 그의 절의가 인정되어 벼슬이 추증되었다. 죽은 지 이백 년 뒤였다.

출처

관련 콘텐츠

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조선 지도에서 관련 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