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상 — 죽은 뒤에도 김부식을 따라다녔다는 사람

1135 1월 · 개경 · 서경

고려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 여러 편에 등장하는 김부식의 손에 죽었다.

시

그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송인」, 사람을 보내며라는 뜻의 짧은 시다.

비 갠 긴 둑에 풀빛이 짙은데 남포에서 임을 보내며 슬픈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대동강 물은 언제나 마르겠는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에 더해지는데, 로 끝난다.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 이 시를 두고 감탄한 문인이 한둘이 아니다. 중국 사신들이 와서도 이 시를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서경 사람

그는 서경, 곧 평양 출신이다. 이것이 그의 생애를 결정한다.

당시 고려 조정에는 개경 중심의 문벌 귀족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그 바깥에서 실력으로 올라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서경 승려 묘청이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주장했을 때, 정지상은 그 편에 섰다. 임금을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세우자는 주장, 금나라를 치자는 주장도 함께였다.

반대편에 김부식이 있었다.

1135년

묘청이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김부식이 진압군을 맡았다.

김부식은 출정하기 전에 개경에 있던 정지상과 김안, 백수한을 먼저 죽였다. 왕에게 알리지도 않고 한 일이었다고 고려사는 적었다.

서경 세력과 내통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 없앤 것이다.

정지상은 반란에 가담해 서경에 가 있지 않았다. 개경에서 죽었다.

귀신 이야기

그 뒤에 붙은 이야기가 있다. 이규보의 이름으로 전하는 『백운소설』에 실려 있다.

정지상이 죽어 귀신이 되었다. 어느 날 김부식이 시를 지었는데, 봄이 오니 버들은 천 가닥 푸르고 복숭아꽃은 만 점 붉다는 구절이었다.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때리며 꾸짖었다. 천 가닥인지 만 점인지 누가 세어보았느냐, 버들은 가닥가닥 푸르고 꽃은 점점이 붉다고 해야 하지 않느냐.

뒤에 김부식이 어느 절에서 뒷간에 갔는데 정지상의 귀신이 뒤에서 나타나 그의 음낭을 움켜쥐고 물었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얼굴이 붉으냐. 김부식이 태연히 답했다. 앞산의 단풍이 얼굴에 비쳐 붉다.

귀신이 더 힘껏 쥐며 말했다. 이건 무슨 가죽 주머니냐. 김부식이 답했다. 네 아비 것은 쇠 주머니더냐.

귀신이 더 세게 쥐었고 김부식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이 이야기는 끝난다.

실제 김부식은 1151년에 병으로 죽었다. 그러니 이것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겼을까

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퍼졌다는 사실 자체가 자료다.

고려의 문인들 사이에서 정지상의 죽음이 부당하다는 감정이 오래 남아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로는 정지상이 위였는데 권력으로는 김부식이 이겼다는 인식도 함께 들어 있다.

이야기 속에서 정지상은 김부식의 시를 고쳐준다. 그것이 이 이야기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산 사람이 이겼으니, 죽은 사람은 이야기로 이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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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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