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지왕에게는 두 아우가 있었다. 하나는 고구려에, 하나는 왜에 볼모로 가 있었다. 왕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우들을 보고 싶다고.
신하들이 삽량주 간(干)으로 있던 박제상을 천거했다.
두 번의 구출
먼저 고구려로 갔다. 장수왕을 설득해 복호를 데리고 돌아왔다. 말로 해낸 일이었다.
돌아온 그는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율포로 향했다. 아내가 뒤늦게 쫓아가 배가 떠나는 것을 보고 울부짖었지만, 그는 손만 흔들고 떠났다.
왜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쳐 온 사람처럼 꾸몄다. 왜왕이 차츰 의심을 풀었다.
어느 날 안개가 짙게 낀 새벽, 그는 미사흔을 배에 태워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남아 방에서 늦게까지 나오지 않는 척하며 시간을 벌었다.
고문
붙잡힌 그에게 왜왕이 물었다. 어찌하여 몰래 왕자를 보냈는가.
그가 답했다. 나는 계림의 신하이지 왜국의 신하가 아니다. 우리 임금의 뜻을 이루려 했을 뿐이니 그대에게 말할 것이 없다.
왜왕이 노해 물었다. 이미 내 신하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신하라고 하면 상을 주겠고 계림의 신하라 하면 벌을 주겠다.
그가 다시 답했다.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고, 차라리 계림의 매를 맞을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녹은 받지 않겠다.
왜왕은 그의 발바닥 가죽을 벗기고 갈대를 벤 위를 걷게 했다. 그리고 뜨겁게 달군 쇠 위에 세워두고 다시 물었다. 어느 나라 신하인가. 그는 같은 대답을 했다.
목도로 끌고 가 불에 태워 죽였다.
돌이 된 아내
그의 아내는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왜 쪽 바다를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었다. 사람들이 그를 치술신모라 불러 사당을 세웠다. 망부석 전설이 여기서 나왔다.
두 이름
이 사람의 이름은 사서마다 다르다. 삼국사기는 박제상이라 적었고 삼국유사는 김제상이라 적었다. 성씨가 다르다.
일본 기록에도 관련 기사가 있는데 세부가 또 다르다. 같은 사건을 세 나라의 자료가 각각 다르게 적어놓은 셈이다.
그가 신라 왕족 계통인지 지방 세력인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삽량주는 오늘날 양산 일대다.
확실한 것은 5세기 초 신라가 고구려와 왜 사이에 끼어 왕의 동생들을 볼모로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한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길을 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