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공 — 허리에 박을 차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

65 8월 · 금성(경주)

신라 초기 기록에 이상하게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왕도 아니고 시조도 아닌데 세 임금에 걸쳐 나온다.

호공(瓠公)이다.

이름이 이름이 아니다

삼국사기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하지 않다. 본래 왜인이었는데 처음에 박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왔기에 호공이라 불렀다.

호(瓠)는 박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호공은 이름이 아니라 별명에 가깝다. 박을 찬 사람, 정도의 뜻이 된다.

박을 허리에 찼다는 것은 물에 뜨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배가 뒤집혀도 죽지 않으려고 매단 물건이 그대로 그 사람의 이름이 되었다.

국적도 이상하다. 왜인이라 적었는데 신라 조정에서 벼슬을 살고 사신으로 나간다. 그래서 이 대목의 왜(倭)를 오늘날의 일본과 그대로 겹쳐 읽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당시 남해안 일대를 오가던 해상 세력을 폭넓게 가리킨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의 등장

첫 번째는 혁거세 때다. 마한에 사신으로 갔는데, 마한왕이 신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호공은 우리나라는 두 성인이 나라를 세워 백성이 편안한데 어찌 두려워하겠느냐고 맞받았다. 왕이 노해 죽이려 하자 신하들이 말렸다.

두 번째는 탈해 때다. 앞 편에서 본 그 집 이야기다. 탈해가 숫돌과 숯을 묻어 그의 집을 빼앗았다. 호공은 신라 초기 기록에서 가장 좋은 집터를 가진 사람이었던 셈이다.

세 번째는 65년이다. 밤에 월성 서쪽 시림을 지나다 큰 빛을 보았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드리웠고 그 속에 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으며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그가 왕에게 아뢰었고, 왕이 가서 궤를 열어 아이를 얻었다. 김알지다.

집을 뺏긴 뒤에도

이상한 것은 이 순서다. 그는 탈해에게 집을 빼앗겼고, 그 탈해가 왕이 된 뒤에 대보(大輔)라는 최고위 벼슬에 올랐다. 그리고 탈해왕에게 김알지의 출현을 알린 사람도 그다.

박씨의 나라에서 사신으로 나갔고, 석씨에게 집을 빼앗겼으며, 김씨의 시조를 처음 발견했다. 신라의 세 성씨가 갈라지는 자리마다 이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죽었는지, 자손이 있었는지는 한 줄도 없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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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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