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에 백제가 망했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끌려간 뒤에도 백제는 3년을 더 싸웠다.
그 3년을 이끈 사람이 셋이다. 그리고 셋은 서로를 죽였다.
세 사람
복신(福信)은 무왕의 조카이자 의자왕의 사촌이다. 왕족이었다.
도침(道琛)은 승려다. 그가 어디 출신인지, 어느 절에 있었는지 알려주는 기록이 없다. 부흥운동의 한복판에 갑자기 등장한다.
부여풍(扶餘豊)은 의자왕의 아들이다. 오래전부터 왜에 볼모로 가 있었다. 백제가 무너지자 복신이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와 왕으로 세웠다.
한때 되찾을 뻔했다
두 사람이 임존성과 주류성을 근거로 일으킨 부흥군은 한때 200여 성을 되찾았다. 당군이 주둔한 사비성을 포위하기도 했다. 왜에서 지원군도 왔다.
당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유인궤를 보내 진압에 나섰지만 한동안 성과가 없었다.
안에서 무너지다
먼저 복신이 도침을 죽였다. 도침의 군사를 자기 아래로 흡수했다.
다음은 복신과 부여풍이었다. 실권은 복신에게 있었고 왕은 이름뿐이었다. 부여풍이 병을 핑계로 누워 있는 복신을 문병하는 척 찾아가 붙잡아 죽였다.
지도부가 이렇게 정리되고 두 달쯤 뒤, 663년 8월 백강에서 왜의 수군과 당의 수군이 맞붙었다. 왜의 배 400척이 불탔다. 주류성이 항복했다.
부여풍은 배를 타고 고구려로 달아났다. 그 뒤 고구려마저 무너진 뒤 당에 붙잡혀 남쪽으로 유배됐다고 전한다. 그의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남는 질문
도침이 누구인지 끝까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이상한 대목이다. 승려가 3만 군사를 지휘했고, 당의 장수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대등하게 응대했고, 그러다 동료의 손에 죽었다. 그런데 그의 출신도 나이도 전하지 않는다.
백제 부흥운동에 승려들이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 자체는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당시 백제 불교 세력이 상당한 조직력과 재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3년의 기록은 대부분 당과 일본의 사서에서 왔다. 삼국사기는 이 시기를 짧게 다룬다. 나라가 이미 없어졌으니 백제본기는 이미 끝난 뒤였기 때문이다.
망한 다음에도 계속된 시간은, 망한 나라의 역사책에 실릴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