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집이 몹시 가난해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밥을 빌어 먹였다. 다 해진 옷에 헌 신을 신고 저잣거리를 다녀서 사람들이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공주 이야기
평강왕에게는 잘 우는 어린 딸이 있었다. 왕은 딸이 울 때마다 이렇게 울어대면 사대부의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겠다고 놀렸다.
딸이 열여섯이 되어 왕이 귀족 집안에 시집보내려 하자, 공주는 임금은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왕이 노해 나가라 하자 공주는 정말로 궁을 나와 온달의 집을 찾아갔다.
온달의 어머니는 내 아들은 가난하고 누추해 귀한 사람이 가까이할 바가 아니라며 거절했고, 온달 자신도 산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내려오다 그 말을 듣고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일 것이라며 달아났다. 공주는 사립문 아래서 밤을 새우고 이튿날 다시 찾아가 설득했다.
공주는 가져온 패물을 팔아 집과 밭과 말을 샀다. 말을 살 때 공주는 시장 사람의 말을 사지 말고, 나라에서 기르다 병들어 내다 파는 말을 사라고 했다. 온달은 그 말을 사서 힘껏 먹여 길렀다.
그가 한 일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삼월 삼짇날 낙랑 언덕에서 사냥을 하고 그 짐승으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 온달이 기른 말을 타고 나가 언제나 앞장서고 잡은 짐승도 가장 많았다. 왕이 불러 이름을 묻고는 놀랐다.
뒤에 후주의 무제가 요동으로 쳐들어왔을 때 온달이 선봉에 서서 수십 명을 베었다. 왕은 그를 사위로 인정하고 대형(大兄) 벼슬을 주었다.
마지막
평강왕이 죽고 영양왕이 서자 온달이 아뢰었다. 신라가 우리 한강 이북 땅을 빼앗아 갔으니 신에게 군사를 주시면 반드시 되찾겠다고. 그리고 떠나면서 맹세했다. 계립현과 죽령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그는 아단성 아래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흐르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 돌아가시지요. 그러자 관이 들려 움직였다.
어디까지가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다. 정사에 실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구조는 민담에 가깝다. 바보가 귀인이 되고, 여자가 남자를 만들고, 죽은 자의 관이 움직인다.
그래서 온달을 실존 인물로 보되 그 생애가 설화의 형태로 정리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온달이라는 이름 자체를 우리말 인명의 한자 표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단성의 위치도 논쟁거리다. 서울 아차산성으로 보는 견해가 오래 우세했지만,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 일대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온달이 되찾겠다고 한 죽령과 계립현이 그쪽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이야기에서 실제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온달이 아니라 공주다. 그런데 이야기의 제목은 온달의 이름을 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