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⑪ 누가 누구에게 보냈나 — 거울 한 장을 둘러싼 논쟁
주장
거울 명문의 사마를 무령왕으로 보고, 남제왕을 뒤에 게이타이 천황이 되는 인물로 보아, 백제 왕이 왜의 왕에게 거울을 내려 준 것이므로 백제가 왜보다 윗자리였다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다. 반대로 일본 쪽 초기 연구는 이 거울을 진구 왕후가 삼한을 정벌하고 받은 것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반박
양쪽 다 명문이 실제로 감당하는 것보다 멀리 나간다. 확인된 것과 논쟁 중인 것을 나누면 이렇다.
확인된 것. 이 거울에 사마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사마가 무령왕이라는 데는 지금 이견이 거의 없다. 1971년 지석에서 백제 사마왕이 나오면서 이름이 겹쳤기 때문이다. 만든 사람으로 적힌 개중비직과 금주리는 백제 계통 기술자의 이름으로 읽힌다. 거울 자체가 백제와 왜를 잇는 물건이라는 사실은 흔들리지 않는다.
논쟁 중인 것. 계미년이 503년인지, 남제왕이 누구인지, 그리고 핵심인 몇 글자를 어떻게 읽느냐다. 염장수(念長壽, 오래 살기를 바라며)로 읽으면 축원을 담아 보낸 선물이 되고, 염장봉(念長奉, 오래 받들 것을 생각하여)으로 읽으면 오히려 사마 쪽이 몸을 낮춘 문장이 된다. 글자 하나로 상하 관계가 뒤집히는 자료를 두고 어느 쪽이 위였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이 시리즈가 취하는 태도는 앞의 것들과 같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읽히는 자료라고 확정된 것처럼 쓰지 않는다. 임나일본부설이 무너진 이유가 바로 사료 한 줄을 확대해석했기 때문이므로, 같은 방식을 우리가 쓰면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남는다. 6세기 초 백제 왕의 이름이 새겨진 거울이 일본의 국보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 나라가 어떤 관계였든 무령왕이 그 관계의 한복판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출처
- [박물관·기념관] 도쿄국립박물관 — 인물화상경 해설
- [언론보도] 인물화상경 명문 해석을 둘러싼 한일 학계 논의 정리
이 글은 무령왕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