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진 문명들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나란히 펼쳐 놓으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서로 만난 적 없는 이야기들이 같은 뼈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뼈대는 이렇다 — 한쪽에는 성벽과 밭과 질서의 세계가 있고, 다른 쪽에는 떠돌며 사는 야생의 세계가 있다. 둘은 부딪히고, 싸우고, 그리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끌어안으며 이야기가 끝난다. 대개 끌어안는 쪽은 정착의 세계다.
첫 번째, 성경의 카인과 아벨. 형 카인은 밭을 갈아 곡식을 바쳤고 동생 아벨은 양을 쳐서 첫 새끼를 바쳤는데, 신은 양치기의 제물만 반겼다고 전한다. 농부가 목자를 죽이는 이 짧은 이야기는, 갓 갈라선 두 삶의 방식이 처음부터 화해하기 어려웠음을 압축한 장면으로 읽힌다. 성경을 남긴 히브리인들 자신이 천막을 치고 가축을 몰며 떠돌던 사람들이었다는 점("히브리"라는 말 자체가 강 건너에서 온 떠돌이를 가리켰다는 풀이가 있다)을 떠올리면, 신이 어느 쪽 편이었는지도 이해가 간다.
두 번째,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길가메시 서사시. 성벽의 왕 길가메시의 횡포를 막으려고 신들이 만들어 보낸 것은 짐승들과 함께 초원을 달리는 야생인 엔키두였다. 둘은 맞붙어 싸우고, 승부가 나지 않자 그 자리에서 둘도 없는 벗이 된다 — 성벽의 세계가 야생을 제 안으로 끌어안는 결말이다. 세 번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왕중왕 아가멤논은 땅과 전리품과 권력을 약속하며 아킬레우스를 붙잡으려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원한 것은 오직 하나, 죽은 뒤에도 모닥불 가에서 회자될 불멸의 명성이었다. 재산을 쌓는 자와 이름을 남기려는 자 — 정착 전사와 유목 전사의 가치관이 그리스 진영 한복판에서 충돌한다. 두 서사시의 전말은 자료실 「길가메시 서사시」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시리즈에서 자세히 다뤘다.
그리고 네 번째가 동아시아에 있다. 중국의 옛 기록(사마천의 사기)이 전하는 헌원과 치우의 탁록 대전이다. 훗날 황제(黃帝)로 불리며 중국 문명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헌원이, 안개를 부리며 저항하던 치우를 꺾고 천하의 질서를 세웠다는 이야기 — 여기까지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런데 묘한 뒷이야기가 있다. 패자인 치우가 죽어서 전쟁의 신이 된 것이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군사를 일으키며 치우에게 제사를 올렸고, 군대는 출정 전에 치우의 깃발에 절했다. 진 쪽이 신으로 남는 일은 흔치 않다. 질서의 세계가 자기를 위협했던 바깥의 힘을 두려워하고, 끝내 신으로 모셔 제 안에 들이는 것 — 엔키두를 벗으로 삼은 길가메시와 정확히 같은 몸짓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치우를 두고 "우리 민족의 조상이다", "아니다 중국의 조상이다"를 다투는 논쟁이 있다(오늘날 중국은 아예 황제·염제·치우를 "중화민족의 세 시조"로 묶어 모신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던지는 질문은 소속이 아니다. 어느 쪽 주장이든 결국 정착민이 남긴 기록 안에서 벌이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물어야 할 것은 "치우는 누구 것인가"가 아니라 "이 기록은 누구의 시선으로 쓰였는가"다. 그 시선을 읽어내는 순간, 네 문명의 네 이야기는 국적 다툼의 재료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무늬 — 정착이 야생을 흡수하며 문명이 되어가는 무늬 — 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무늬는 건국신화라는 형태로 초원 전체에 퍼져 있다. 다음 편에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