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와 노모스 — 풀을 나누던 말이 법이 되기까지

-2000 · 흑해~카스피해 스텝(초원지대)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nomad)와 법·규범을 뜻하는 노모스(nomos)는 놀랍게도 뿌리가 같은 말이다. 둘 다 그리스어 "네메인"에서 나왔는데,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 가축에게 풀을 뜯기다, 그리고 몫을 나누어 할당하다. 언뜻 정반대로 보이는 유목과 법이 한 단어에서 갈라져 나온 셈인데, 곰곰이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없다. 떠돌며 가축을 먹이는 삶이야말로 나눔의 규칙 없이는 하루도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골짜기의 풀은 너희 무리 몫, 저 강가는 우리 몫, 봄에는 여기, 가을에는 저기 — 문서도 울타리도 없이, 오직 약속과 관습만으로 광대한 초원이 분배되고 있었다. 그 약속이 인간 세상 전체로 확장된 것이 곧 법이다.

그렇다면 그 유목이라는 삶의 방식은 언제 시작됐을까.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다. 인류는 원래 모두가 떠돌이였다(수렵채집). 약 1만 년 전 농사가 시작되면서 일부가 눌러앉았고, 이때 농사와 가축 기르기는 한 마을 안에 뒤섞여 있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4천 년 전, 가축 기르기가 농사에서 갈라져 나와 독립한다 — 계절을 따라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오직 가축 떼로만 먹고사는 전문가들, 우리가 아는 유목민의 등장이다. 이들이 기록에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기원전 9세기 무렵 흑해 북쪽의 스키타이부터이고, 동쪽에서는 기원전 3세기 흉노가 그 자리를 잇는다.

이들의 무대가 된 초원은 상상을 넘는 규모였다. 헝가리 평원에서 시작해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을 지나 몽골까지, 풀밭이 거의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길이 약 7,500킬로미터 —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천연 고속도로였다. 말을 탄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물건과 기술과 이야기를 실어 날랐다. 뒤에서 보겠지만 전차와 강력한 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신화의 뼈대가 초원을 따라 사방으로 퍼진 것도 모두 이 고속도로 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길 위에 선 나라들의 계보 — 흉노에서 돌궐, 몽골, 그리고 1758년 청나라가 마지막 유목 세력 준가르를 무너뜨리며 2천 년 유목제국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까지 — 는 자료실 「초원 제국」 시리즈가 자세히 다룬다.

다시 노모스로 돌아오자. 법이 "나누는 규칙"에서 태어났다는 이 어원은, 초원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법을 볼 때도 의미심장하다. 고조선의 8조법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세 조항 —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 갚고,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고, 도둑질한 자는 그 집의 종이 되되 돈으로 죄를 벗을 수 있다 — 은 하나같이 "무엇을 무엇으로 갚는가", 곧 몫을 다시 맞추는 규칙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풀을 나누던 원리와, 한반도에서 죄와 배상을 나누던 원리가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법이란 결국, 함께 사는 인간들이 몫을 나누는 기술이다.

그런데 나눔의 규칙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맞부딪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문서와 울타리로 땅을 나누는 정착민과, 관습과 계절로 초원을 나누는 유목민 — 작년까지 우리 양떼가 풀을 뜯던 골짜기가 올해 남의 밭이 되어 있을 때, 유목민의 눈에 그것은 개간이 아니라 약탈이었다. 정착민의 기록에는 정반대로 적혔다. 그런데 어긋남은 땅의 경계에서 그치지 않았다. 쌓이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과 걸어 다니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재산과 권력과 죽음을 서로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그 갈라짐이 다음 편의 주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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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움직이는 인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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