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그리는 문명의 순서는 깔끔하다. 먼저 농사를 짓고, 그래서 정착하고, 먹을 것이 남으니 사람이 모이고, 그제야 신전을 세우고 도시를 만든다 — 배부른 다음에 기도한다는 순서다. 그런데 튀르키예 남동부의 한 언덕이 이 순서를 뒤집어 놓았다. 현지어로 "배불뚝이 언덕"이라 불리던 괴베클리 테페다.
1990년대 중반,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이 언덕을 파기 시작했을 때 나온 것은 상상 밖의 광경이었다. 사람 키의 세 배가 넘는 T자 모양의 거대한 돌기둥 수십 개가 둥글게 늘어서 있고, 기둥마다 여우·멧돼지·뱀·독수리 같은 짐승들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무거운 것은 수십 톤에 이르는 이 돌들을 다듬고 세운 시기를 측정해보니, 지금으로부터 약 1만 1천 년 전 —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7천 년이나 앞서고,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농사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없는 것들이었다. 이만한 시설을 지으려면 수백 명이 모여 살았어야 할 텐데, 초기 발굴에서는 집터도 화덕도 무덤도 나오지 않았다. 나온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야생 짐승 뼈 —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잔치를 벌인 흔적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마을이 아니라, 사방에 흩어져 살던 수렵채집민들이 철마다 모여드는 축제와 의례의 장소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이렇게 요약했다 — "먼저 신전이 있었고, 도시는 그다음에 왔다."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거대한 것을 짓는 경험, 모인 수백 명을 먹이기 위해 야생 밀을 대량으로 거두는 경험이 오히려 농경과 정착을 부른 방아쇠였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공정하게 덧붙이면, 최근 발굴에서는 물 저장 시설 등 사람이 머문 흔적도 일부 확인되어 "순수한 의례 장소였느냐, 사람도 살았느냐"는 지금도 토론 중이다. 그래도 핵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 이 거대한 기념물을 세운 것은 농부가 아니라, 아직 떠돌며 살던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이 시리즈의 출발점에서 괴베클리 테페가 중요한 이유다. 우리는 "떠도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전제 위에서 역사를 배워왔다. 그런데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기념물의 건설자가 바로 그 떠도는 사람들이었다. 기록과 유적이 없어서 지워진 것과,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같은 시기의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대비가 선명해진다. 괴베클리 테페에 거석이 서던 무렵 한반도는 아직 신석기시대의 문턱이었고, 사람들이 조와 피 같은 잡곡을 재배한 흔적(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의 불에 탄 좁쌀)이 나타나는 것은 그로부터 수천 년 뒤다. 문명의 시계는 지역마다 다르게 흘렀다. 하지만 방향은 놀랄 만큼 같았다 — 어디서든 인간은 모이고, 기념하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다음 편에서는 그 "모여서 나누는" 행위에서 법이라는 것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