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역사 — 인간은 움직이려고 태어났다

-70000 · 동아프리카 대지구대

우는 아기를 안아 올려 가볍게 흔들어주면 울음이 잦아든다. 유모차에 태우면 조용해진다. 누구나 아는 이 현상을 과학자들이 실제로 측정해봤더니, 안겨서 움직이기 시작한 아기는 빠르게 뛰던 심장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연구자들의 해석은 이렇다 — 흔들림은 아기에게 "지금 무리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고, 이동 중이라는 것은 곧 혼자 버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것.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아이를 안고 걷는 존재였고, 그 기억이 아직 우리 몸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몸에 남은 흔적은 또 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유전자 가운데,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변이가 하나 있다(도파민이라는 보상 물질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남들과 다른 형태다). 케냐의 아리알이라는 부족을 연구한 결과가 흥미로운데, 이 부족은 같은 핏줄인데도 일부는 가축을 몰며 이동하는 삶을, 일부는 한곳에 정착한 삶을 산다. 그런데 똑같이 이 변이를 가진 사람이라도 이동하며 사는 쪽에서는 영양 상태와 체격이 또래보다 좋았고, 정착한 마을에서는 오히려 나빴다. 같은 유전자가 어떤 환경에서는 선물이 되고 어떤 환경에서는 짐이 된다는 것 — 우리 몸이 어느 쪽 삶에 맞춰 만들어졌는지를 넌지시 알려주는 결과다.

실제로 인류의 이력서에서 "정착"은 최근 경력에 불과하다.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등장한 지 약 30만 년, 그중 농사를 짓고 눌러앉은 기간은 길어야 1만 년 남짓이다. 이력서의 97퍼센트가 "이동"으로 채워져 있는 셈이다.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들은 수만 년에 걸쳐 걸어서 유라시아를 건넜고, 배를 타고 호주에 닿았고,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 끝까지 갔다.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넓게 퍼진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그 긴 이동의 역사가 역사책에는 거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 기록은 멈춰 선 사람들이 남기기 때문이다. 성벽을 쌓은 사람들은 점토판과 비석과 두루마리를 남겼지만, 천막을 걷어 떠나는 사람들은 이야기와 노래로만 기억을 전했다. 그래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남의 기록 속에서만 등장한다. 그것도 좋은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 기록이 초원의 이웃에게 붙인 "흉노"라는 이름에는 흉하다는 뜻의 글자가 들어 있고, 그리스인들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인다며 이웃을 "바르바로이"(야만인)라 불렀다. 우리 조상들도 그 기록 속에서는 동쪽 오랑캐, "동이"였다.

이 시리즈는 그 기울어진 저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저울을 바로잡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이상한 질문들로 나아갈 것이다. 왜 곡식을 쌓는 사람과 가축을 모는 사람은 세상을 그토록 다르게 보게 되었는가(4편). 왜 성경의 카인과 아벨,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와 엔키두, 중국의 헌원과 치우는 뼈대가 같은 이야기인가(5편). 왜 고구려의 주몽과 흉노의 왕은 똑같이 "하늘의 아들"을 자처했는가(6편). 왜 시베리아의 곰 이야기가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도 있는가(8편). 닮은 이야기 중 어떤 것이 진짜 혈연이고 어떤 것이 우연인가(9편). 그리고 마지막으로 — 왜 인간은 어디서나, 에덴에서 아틀란티스까지, 잃어버린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는가(10편). 출발점은 하나다. 인간은 움직이려고 태어났고, 이야기는 그 발걸음과 함께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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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움직이는 인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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