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의 역설
정부가 스스로 "친일반민족행위자"라 결정한 이들, 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반란 가담자들이 왜 아직 국립묘지에 있는가 — 45년째 풀리지 않는 제도의 공백을 따라간다
글 목록 (11편)
- 프롤로그 — 언덕 하나에 두 개의 이름이 있다 (1965)
- 정부가 결정한 12명 — 그리고 민간이 집계한 63명 (2009 11월)
- 백선엽 — 다부동의 명장과 간도특설대의 중위, 한 사람 안의 두 얼굴 (2020 7월 15일)
- 김창룡 — "순직 처리"라는 열쇠로 열린 국립묘지의 문 (1998 2월)
- 보안사의 기념사진 — 34명, 그 후 45년 (1979 12월 14일)
- 안장을 가른 한 가지 우연 — 확정판결과 사망, 무엇이 먼저였나 (1997)
- 두 전직 대통령 — 갈 곳 없는 유해와 사설 묘지 (2025 9월)
- 같은 언덕, 몇 걸음 거리 — 저항한 이와 반란을 일으킨 이 (2010)
- 김오랑 — 논란 없는 유일한 이름 (1979 12월 13일)
- 20년째 폐기되는 법안, 그리고 새로 열린 질문 (2026)
- 에필로그 — 언덕이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