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모리를 찾아서 — 춘천 우두산에서 발굴된 일본 신
주장
『일본서기』 신대기에는 스사노오노미코토가 고천원에서 쫓겨난 뒤 아들과 함께 신라국의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곳에 내려왔다가, 이 땅에는 살고 싶지 않다며 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이즈모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는 소시모리를 우리말 소의 머리로 풀고, 그 한자 표기인 우두(牛頭)가 붙은 곳을 조선 전역에서 찾아 나섰다. 우두라는 지명이 여러 곳이어서 경주설과 가야설과 춘천설이 갈렸는데, 춘천이 신라 때 우수주(牛首州)·우두주로 불렸고 우두산과 우두산성이 있다는 점 때문에 유력한 후보가 됐다. 1935년에 나온 『춘천풍토기』는 스사노오가 머문 곳이 바로 이 우두산이라고 주장했다.
반박
먼저 확인할 것은 비정 자체가 아주 근거 없는 착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시모리의 위치는 지금도 학계의 논의 대상이고, 춘천이 옛 우수주·우두주였다는 이유로 여러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밖에 서라벌, 고령, 공주, 드물게는 길림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모리를 숲이나 산을 뜻하는 옛말로 보아 으뜸가는 성소 곧 소도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다. 문제는 비정이 아니라 그 비정이 무엇에 쓰였는가다.
첫째, 이 기사는 신대기, 곧 신화 부분에 실려 있다.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흙으로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는 이야기에서 지명 하나를 뽑아 실제 지도 위의 한 점으로 확정하는 것은 사료를 다루는 방식이 아니다. 어디로 비정하든 그 앞에는 신화 속 지명에 대한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둘째, 근거가 지명의 소리 하나뿐이다. 소시모리와 소머리가 비슷하다는 것 외에 이 비정을 뒷받침하는 물증은 제시된 적이 없다. 춘천 일대에서 이 시기 왜와의 직접적 연결을 보여주는 유적 체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셋째, 그리고 이 편이 다루려는 핵심이 여기 있다. 이 비정은 학문적 호기심에서 끝나지 않았다.
1918년 3월, 춘천 봉의산에 춘천신사가 세워졌다. 제신은 아마테라스, 국혼대신, 메이지 천황, 그리고 스사노오였다. 1936년에 도공진사로 지정되고 1938년 강원신사로 이름을 바꾼다.
그 사이 1937년에 벌어진 일이 이 사안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선총독부는 우두산에 스사노오의 분묘는 없으나 그곳이 스사노오의 유적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스사노오의 신체(神體)를 우두산에서 발굴해 신사에 합사했다. 조선에 세워진 신사는 예외 없이 일본에서 신체를 가져와 합사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조선 땅에서 신체를 발굴해 합사한 첫 사례가 이것이다.
신화 속 지명 비정이 신사 건립으로, 다시 그 땅에서 신을 파내는 의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논증이 필요한 자리마다 논증 대신 시설과 의식이 들어섰다.
그 다음 단계는 조선 왕실의 건물이었다. 1938년 춘천이궁의 바깥문 조양루가 갑자기 우두산으로 옮겨졌다. 1940년 강원신사의 대문은 춘천이궁의 위봉문과 같은 형식인 솟을대문으로 지어졌다. 같은 해 춘천이궁의 본전 문소각이 원인 모를 화재로 사라졌다. 1941년 10월 강원신사는 국폐소사로 승격되며 크게 개조된다.
이 신사는 조선에 세워진 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한옥 형태로 개축된 곳이었다. 제관사무소는 겉보기에 완전한 조선 건축이었고 안에는 온돌을 깔았다고 당시 신직으로 근무한 사람이 회고했다. 일본 신을 모시는 시설을 조선의 사당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내선일체를 건물의 형태로까지 밀어붙인 사례다.
정리하면 이렇다. 지명의 소리가 닮았다는 우연에서 출발해, 그것을 신화와 잇고, 그 자리에 신사를 세우고, 땅에서 신을 파내고, 조선 왕궁의 부재를 뜯어다 붙이고, 마침내 조선의 사당처럼 위장하는 데까지 갔다. 단계마다 논증이 필요했지만 어느 단계에서도 논증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 자리는 지금 춘천 시내의 한 호텔 부지다. 계단과 입구의 형태가 신사 시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지역 연구자들의 지적이 있다.
같은 방식이 같은 시기에 경상북도 의성에서 한 번 더 되풀이된다. 다음 편이 그 이야기다.
출처
- [단행본] 일본서기 신대기 상 · 제8단 일서
- [단행본] 삼국사기 잡지 · 지리2 삭주(우수주)
- [article] 한·일 고대문화의 소시모리(曾尸茂利)와 蘇塗의 연관성
- [article]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근현대 춘천 이야기 — 춘천 신사 건립과 춘천이궁 해체
- [기록보존소] 디지털거창문화대전 — 「우두산 이야기」(소시모리 비정 경위)
- [단행본] 춘천풍토기(春川風土記)
이 글은 역사왜곡에 맞서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