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5년 안데스 고원에서 거대한 은맥이 발견되었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곳에 광산 도시가 세워졌고, 한때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인구가 많았다.
은을 캐낸 것은 교대로 징발된 원주민 노동자들이었다. 수은을 써서 은을 뽑아내는 방법이 도입되면서 생산은 늘었지만 노동 조건은 더 나빠졌다.
그 은이 어디로 갔는가를 따라가면 이 편이 한반도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인다.
1571년 마닐라에 거점이 세워지고 아카풀코를 잇는 태평양 항로가 정기화되었다. 아메리카의 은이 태평양을 건너 마닐라로 가고, 그곳에서 중국 상인들과 비단·도자기로 교환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교역망이 이때 완성된다.
왜 중국이었나. 명이 세금을 은으로 걷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면서 은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은의 가치가 다른 곳보다 높았고, 그 차이가 은을 빨아들였다.
그 수요를 채운 것은 아메리카 은만이 아니었다. 일본 은이 큰 몫을 담당했는데, 그 생산을 끌어올린 기술이 조선에서 건너간 것이었다. 16세기 초 조선에서 납을 이용해 은을 분리하는 방법이 시연된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고, 그 기술이 일본으로 전해지며 이와미 은광의 생산이 크게 늘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어진다. 조선의 제련 기술이 일본의 은 생산을 늘리고, 그 은과 아메리카의 은이 함께 중국으로 흘러들어 명의 재정을 움직이고, 그 교역의 이익이 일본의 국력을 키우는 조건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1592년 그 일본이 조선을 침공한다.
하나의 선으로 잇기에는 중간에 너무 많은 요인이 있고, 기술 전파가 전쟁의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16세기의 한반도가 세계 경제의 바깥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구 반대편 고원의 광산과 이 반도의 제련 기술이 같은 흐름 안에 있었다.
한 지역의 기술과 자원이 세계의 흐름에 얽힐 때, 그 결과는 얼마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 역사를 얼마나 세계 안에서 읽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