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0년 국왕이 학자들을 소집했다. 주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정복하고 그 노동을 강제하는 것이 정당한가였다.
한쪽은 이렇게 주장했다. 그들은 본성상 예속에 적합하며, 문명을 가르치기 위한 지배는 정당하다. 인신 공희 같은 관습을 막는 것은 오히려 의무다.
다른 한쪽은 반박했다. 그들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며 자기 사회와 법을 가지고 있다. 신앙은 설득으로 전해야지 무력으로 강요할 수 없다. 정복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은 정당화될 수 없다.
반박한 쪽은 원래 정복자였다. 카리브에서 원주민 노동을 배정받아 살던 사람이었고, 그 실상을 보고 성직자가 되어 평생 이 문제에 매달렸다. 그가 쓴 고발서는 유럽에서 널리 읽혔다.
논쟁의 결론은 명확히 나지 않았고 현실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왕은 이미 8년 전 원주민 노동 배정을 제한하는 법을 냈지만 현지의 반발로 후퇴한 상태였다. 대양 건너의 집행은 현지 세력의 손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남는다. 제국이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공개로 심문한 드문 사례이며, 여기서 나온 주장들 — 모든 인간은 이성을 가지며 정복만으로는 지배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 이 뒷날 국제법과 인권 개념의 뿌리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한계도 함께 적어야 한다. 원주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노동력을 대신할 사람들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 답이 아프리카인 노예 수입이었다. 고발서를 쓴 그 사람도 초기에는 그 대안을 제안했다가 나중에 후회를 기록했다. 한 집단을 보호하려는 논리가 다른 집단의 예속을 정당화한 것이다.
비판이 제국 안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그 비판이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일까, 아니면 그 기록이 남은 것 자체가 무언가를 바꾼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