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스페인이 유대인에게 개종과 추방 중 하나를 택하게 했다. 쫓겨난 사람들 상당수가 오스만 영토로 갔고, 테살로니키는 유대인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도시가 되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내쫓을 때, 오스만은 그들을 받았다.
이 사실만 떼어 놓으면 관용의 제국이라는 그림이 된다. 실제로 오스만은 종교 공동체별로 자치를 인정하는 체계를 운영했다. 정교회·아르메니아 교회·유대교 공동체가 각각 자기 법으로 혼인과 상속과 내부 분쟁을 처리했고, 대표를 통해 국가와 상대했다. 이를 밀레트라 부른다.
그러나 그 공존은 대등한 공존이 아니었다. 비무슬림은 인두세를 냈고, 법정에서 무슬림과 같은 무게로 증언하지 못했으며, 복장과 주택과 말을 타는 일에까지 제약이 있었다. 자치는 권리라기보다 위계 안에 배정된 자리였다.
그리고 데브시르메가 있었다. 발칸의 기독교 가정에서 소년을 징발해 개종시키고 궁정과 군대에서 키우는 제도다. 그중 일부는 재상까지 올라갔고, 가난한 마을의 아들이 제국의 최고 자리에 오르는 통로이기도 했다. 자식을 보내기 위해 애쓰는 부모도 있었다고 전한다.
동시에 그것은 강제 징발이었다. 아이를 숨기거나 서둘러 혼인시켜 피하려 한 기록도 함께 남아 있다. 출세의 사다리였다는 것과 빼앗김이었다는 것은 둘 다 사실이며, 어느 한쪽만 말하면 정직하지 않다.
평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같은 시대의 유럽과 견주면 오스만의 체계는 확실히 덜 폭력적이었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종교에 따라 사람의 지위가 갈리는 제도였다.
과거의 제도를 평가할 때 우리는 같은 시대의 다른 곳과 견주어야 할까, 오늘의 기준으로 재야 할까? 그 선택은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가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