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을 긋지 않았습니다. 짙을수록 중심이고, 세력끼리 겹치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당대의 실상입니다. 1402년 시점에서 오스만의 농도가 갑자기 옅어지는 것은 자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중앙의 통제가 사라지고 형제들이 11년을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도는 「유럽의 병자」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 이름은 19세기 유럽이 붙인 것이고, 그것으로 600년을 요약하면 그중 300년 넘게 유럽이 두려워한 상대였다는 사실이 지워집니다. 쇠퇴는 이 제국의 성격이 아니라 마지막 국면입니다.
1915년 시점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입니다.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조직적 강제 이주와 학살은 오늘날 학계 다수와 많은 나라가 제노사이드로 규정하고 있으며, 튀르키예 정부는 이를 부정합니다. 확정된 사실의 부정에는 중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아틀라스의 원칙이고, 그 원칙은 어느 나라에나 같게 적용됩니다.
좌표와 반경은 개형(槪形)입니다. 실측 국경이 아니라 “어디까지 미쳤나”를 농도로 읽는 용도이며, 특정 경계의 위치를 다투는 근거로 쓸 수 없습니다. 희생자 수처럼 추정 폭이 큰 수치는 단정하지 않고 그 범위를 밝혔습니다.
한국과 튀르키예는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부릅니다. 그러나 조선과 오스만 사이에 국가 차원의 교류 기록은 사실상 없습니다. 두 사회가 실제로 만난 것은 1950년, 한국전쟁에 튀르키예가 파병하면서였고 그 뒤 2002년의 경기가 그 서사를 굳혔습니다. 돌궐을 고구려의 형제로 잇는 이야기도 근거가 단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형제의 나라”는 거짓일까요? 아니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어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다른 이야기들은 언제, 왜 만들어진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