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너무 많은 왕관을 썼을 때

1556 · 스페인 유스테

16세기 중반, 한 사람이 스페인과 아메리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절반, 그리고 신성로마 황제 자리를 함께 갖고 있었다.

그는 40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이동하며 통치했다. 각 지역이 서로 다른 법과 의회와 언어를 가졌기 때문에 한곳에 앉아 다스릴 수 없었다. 한 지역에서 세금을 걷으려면 그곳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고, 그 동의는 늘 조건이 붙었다.

부담은 세 방향에서 왔다. 서쪽에서는 프랑스와 다투었고, 동쪽에서는 오스만이 빈을 포위했으며, 안에서는 종교 분열이 번졌다. 아메리카에서 은이 들어왔지만 그 은은 들어오자마자 전쟁 비용으로 나갔다.

1556년 그는 물러났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와 아메리카는 아들에게, 오스트리아와 신성로마 황제 자리는 동생에게 넘겼다. 수도원에 들어가 2년 뒤 죽었다.

분할의 이유는 명확했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결정이 두 갈래의 운명을 갈랐다. 스페인계는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잇단 파산을 겪다 150년 만에 대가 끊기고, 오스트리아계는 오스만 전선을 지키며 중부 유럽의 대국이 된다.

같은 해 독일에서는 각 제후에게 종교의 선택권을 주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황제가 신앙을 통일하려던 시도가 실패한 것이며, 신성로마제국이 하나의 국가가 되지 못한 결정적 지점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제국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보인다. 오스만과 청은 여러 지역을 각기 다른 원리로 다스렸지만 중앙의 결정권은 하나였다. 합스부르크는 각 지역의 기존 권력을 그대로 두고 왕관만 겹쳐 썼다. 그래서 저항이 적었고, 동시에 통합도 되지 않았다.

지배의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 곧 통합을 막는 방식이기도 하다면, 제국은 그 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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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합스부르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