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6년 헝가리 왕이 모하치에서 오스만군에 패해 전사했다. 혼인 협약에 따라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관이 합스부르크에게 넘어왔다. 그런데 실제로 지배한 것은 헝가리 왕국의 서쪽 조각뿐이었다. 중부는 오스만이 직접 다스리고 동부는 오스만의 보호 아래 자치 공국이 되었다 — 하나의 왕국이 셋으로 갈라진 채 150년을 간다.
얻은 것과 짊어진 것이 같은 날에 왔다. 왕관 두 개를 얻으면서 동시에 유럽에서 가장 무거운 전선을 떠맡은 것이다.
1529년 빈이 처음 포위되었다. 실패로 끝났지만 충격은 컸다. 이후 150년 동안 합스부르크는 헝가리 서쪽 조각을 지키는 대가로 오스만에 공납을 보내기도 했다 — 유럽의 대국이 오스만에 돈을 보내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흔히 잊힌다.
1683년 두 번째 포위가 있었다. 두 달 가까이 버티다 폴란드 구원군이 도착하며 풀렸다. 이번에는 물러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반격이 이어졌고 16년 뒤 조약으로 헝가리 전체가 넘어왔다.
되찾은 땅은 비어 있었다. 150년의 전쟁으로 인구가 크게 줄어 있었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는 독일계와 세르비아계 주민을 대규모로 이주시켜 그 자리를 채웠다.
이 결정이 뒷날 무엇을 낳았는지가 이 편의 핵심이다. 한 왕국 안에 헝가리인·독일인·세르비아인·루마니아인·슬로바키아인·크로아티아인이 뒤섞여 살게 되었고, 200년 뒤 민족이 국가의 단위가 되는 시대가 오면서 이 구성 자체가 존립의 문제가 된다.
같은 시기 오스만도 발칸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제국은 사람을 옮겨 땅을 채우는 데 익숙했다 — 국경보다 인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국민국가는 그 반대다. 국경 안의 인구가 하나여야 한다고 전제한다.
제국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인구 구성을 국민국가의 원리로 다시 나눌 때, 그 사이에 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