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선을 긋고 떠나다

1947 · 인도 암리차르

1947년 8월 인도가 독립했다. 동시에 둘로 나뉘었다.

국경선을 그은 사람은 인도에 와 본 적이 없는 영국 법률가였다. 다섯 주가 주어졌고, 낡은 인구 조사 자료와 지도를 놓고 선을 그었다. 그 선이 발표된 것은 독립일 이틀 뒤였다 — 사람들은 자기 마을이 어느 나라가 되는지 모르는 채로 독립을 맞았다.

1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국경을 건넜다. 종교를 기준으로 어느 쪽으로 갈지 정해야 했고, 그 과정의 폭력으로 수십만에서 백만 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수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오래 함께 살던 이웃이 서로를 죽인 사례가 광범위하게 기록되어 있다.

왜 이렇게 급했나. 영국은 전쟁으로 재정이 무너져 제국을 유지할 힘이 없었다. 철수는 결단이자 동시에 불가피였고, 그 급한 속도가 선을 긋는 방식에 그대로 나타났다. 카슈미르의 귀속 문제는 그해에 첫 전쟁으로 이어지고 오늘까지 미해결로 남아 있다.

같은 방식이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었다. 아일랜드는 1921년에 분할된 채 자치령이 되었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는 1948년에 종료되며 곧바로 전쟁이 벌어졌다. 키프로스도 뒤에 갈라졌다. 제국이 물러난 자리마다 선이 남았고, 그 선들 위에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 시작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영국이 그은 것이 아니다. 다른 두 나라가 다른 맥락에서 그은 선이다. 그러나 형태는 닮아 있다 —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은 결정으로, 짧은 시간에, 지도 위에서 정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1947년 인도에서 벌어진 일을 보는 것은 우리 쪽의 1945년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다.

1960년 한 해에만 아프리카에서 17개국이 독립했다. 대부분 유럽이 그어 둔 국경선을 그대로 안고 출발했다. 국경을 다시 긋는 것이 더 큰 혼란을 부른다는 판단 아래 신생국들은 기존 선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는데, 그 합의 자체가 제국이 남긴 조건을 물려받는다는 뜻이었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되면서 마지막 큰 매듭이 풀린다. 155년 전 아편전쟁의 조약으로 넘어간 땅이 돌아간 것이다. 지도 위의 붉은 색은 사라졌지만, 그 색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어와 법과 국경선과 사람들의 이동 경로가 남았다.

제국이 물러나면서 그은 선들은 왜 그렇게 오래 남을까? 그리고 그 선을 물려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다시 그을 권리는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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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영제국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