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남아프리카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상대는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이 세운 두 공화국이었고, 그 땅에는 금이 있었다.
정규전에서 이긴 뒤에도 게릴라전이 이어지자 영국군은 농장을 태우고 민간인을 대규모 수용소에 가두었다. 그곳에서 수만 명이 병과 굶주림으로 죽었고 그중 다수가 어린이였다. 함께 갇힌 아프리카 흑인들의 사망자는 오랫동안 제대로 집계되지도 않았다.
이 사실을 조사해 알린 것은 영국의 활동가였다. 의회에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영국인이었고, 여론이 갈라지면서 전쟁의 명분 자체가 안에서 흔들렸다. 제국을 비판하는 가장 강한 목소리가 제국의 심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함께 적어야 할 부분이다.
전쟁이 끝난 뒤 만들어진 새 체제에서 백인들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졌다. 그 화해는 아프리카 흑인 다수를 정치적 권리에서 배제하는 조건 위에 세워졌고, 그 구조가 뒷날 인종 분리 체제로 이어진다.
한 가지 더. 이 전쟁에는 인도인 의료 부대가 참여했고, 그 조직을 이끈 젊은 변호사가 남아프리카에서 겪은 차별의 경험을 가지고 뒤에 인도로 돌아간다. 제국의 한쪽 끝에서 겪은 일이 다른 쪽 끝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 — 제국은 지배의 그물이자 동시에 사람과 사상이 오가는 그물이었다.
같은 시기 제국의 여러 곳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학하거나 일하러 간 사람들이 본국에서 배운 언어와 법 개념으로 본국의 지배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배자의 언어로 지배를 반박하는 방식은 20세기 독립운동의 공통된 형태가 된다.
제국이 만든 연결망이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쓰였다면, 지배와 그 지배가 낳은 저항은 얼마나 분리해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