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의문사

1975년 8월 17일 · 경기 포천 약사봉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두 차례 구속됐던 장준하는 1974년 12월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에도 반유신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75년 8월 광복 30주년을 맞아 김대중·함석헌·문익환 등과 은밀히 접촉하며 모종의 거사를 준비하던 그는, 8월 17일 호림산악회 회원들과 경기 포천 약사봉을 등반하다 일행과 떨어져 12m 절벽 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검안의는 후두부에 직경 5~6cm의 원형 함몰골절이 있다고 기록했지만, 정작 추락사라면 동반되어야 할 전신 골절이나 옷의 찢어짐, 안경 파손 등은 전혀 없었다.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은 평소 연락이 끊겼다가 사망 당일 갑자기 동행했고, 사후 장준하의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검찰은 부검 없이 5분 만에 현장검증을 마치고 실족사로 종결했다. 1993년·2002년 재조사에서도 "추락사로 보기 어렵다"는 법의학 감정이 나왔지만 국정원·기무사의 자료 비협조로 진상규명에는 끝내 이르지 못했고, 2012년 묘 이장 때 드러난 두개골에서도 검안 당시의 함몰 흔적이 그대로 확인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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