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 비상조치 — 유신 선포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박정희는 특별선언을 발표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정치활동을 전면 중지시키며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전차와 장갑차가 서울 거리에 등장했다. 평화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한 체제 정비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직선제로는 더 이상 장기집권이 어려워진 상황을 헌정 중단으로 돌파한 것이었다. 이날부터 약 7년간 이어질 유신체제의 시작이었다.
왜 일어났나
1971년 선거에서 박정희는 김대중에게 힘겹게 이겼고 야당은 국회에서 늘어났다. 미국이 중국과 손잡고 베트남에서 발을 빼면서 안보 위기가 강조되었고,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 대화가 열린 참이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으며 헌법을 정지시켰다. 통일과 안보를 위해 체제를 바꾼다는 명분이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유신헌법은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뽑게 하고 임기 제한을 없앴으며 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이 지명하게 했다. 긴급조치로 헌법 비판 자체가 처벌되었고, 인혁당 사건 같은 사법살인이 일어났다. 유신은 1979년 10·26으로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7년 이어졌다. 이 헌법을 어떻게 볼지가 지금도 한국 정치의 갈림길 중 하나다.
관련 인물
세계는 같은 시기
- 닉슨의 중국 방문 — 미중 데탕트 (1972)
1972년 2월 21일 닉슨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저우언라이와 회담했다. 한국전쟁 이후 20여 년간 적대했던 양국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통해 관계 정상화 의지를 밝혔다.
중소분쟁으로 소련을 견제해야 했던 중국과, 베트남전에서 빠져나오며 소련을 봉쇄해야 했던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박정희는 닉슨에게 직접 서신을 보내 방중 시 한국 문제가 사전 협의 없이 논의되지 않도록 요청했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10월유신
- 위키백과 10월유신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이 든 루트
같은 무렵의 사건
인물 페이지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