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남북공동성명
1972년 7월 4일 남북이 동시에 발표한 공동성명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을 담으며 데탕트 국면 속 남북대화의 진전을 보여줬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비밀 방북과 북측 박성철의 서울 방문으로 성사된 이 성명은 평화통일을 향한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박정희는 같은 해 가을, 바로 이 남북대화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유신을 선포한다 — 화해의 언어가 영구집권의 논리로 전용되는 역설이었다.
세계는 같은 시기
- 닉슨의 중국 방문 — 미중 데탕트 (1972)
1972년 2월 21일 닉슨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저우언라이와 회담했다. 한국전쟁 이후 20여 년간 적대했던 양국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통해 관계 정상화 의지를 밝혔다.
중소분쟁으로 소련을 견제해야 했던 중국과, 베트남전에서 빠져나오며 소련을 봉쇄해야 했던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박정희는 닉슨에게 직접 서신을 보내 방중 시 한국 문제가 사전 협의 없이 논의되지 않도록 요청했다.
- 중소 국경 분쟁 — 공산권의 균열 (1969)
1956년 이후 이념과 노선을 둘러싸고 불화하던 중국과 소련이, 1969년 3월 우수리강의 국경 섬 전바오다오(다만스키섬)를 두고 무력 충돌했다.
같은 공산권 종주국 다툼이 결국 무력 충돌로까지 번지며, 사회주의권이 결코 하나의 단일한 블록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냈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10월유신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이 든 루트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