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사건 — 버려진 북파공작원들의 최후

1971년 8월 23일 · 인천 실미도 → 서울 대방동

1968년 1·21사태(청와대 기습 미수)에 대한 보복으로, 중앙정보부와 공군은 김일성 암살을 목표로 한 특수부대(684부대, 일명 실미도부대)를 창설해 민간인 31명을 모집해 가혹한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1971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며 작전 계획이 무기한 보류되자, 정부는 부대를 방치한 채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처우 개선 약속이 끝내 지켜지지 않자 8월 23일 공작원들은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하다 서울 대방동에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대부분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이 교전으로 경찰 2명과 민간인 6명이 사망했고, 생존한 4명도 1972년 사형에 처해졌다. 정부는 오랫동안 진상을 은폐했고, 2024년에야 국방부가 53년 만에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참고 자료

지도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