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련철폐투쟁 격화
정부가 1971년 2월 교련 수업을 대학 전체 수업의 20%까지 늘리고 1~4학년 전원에게 의무화하는 방안을 통과시키자, 신학기 초부터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3월 23일 전국 12개 대학 학생회 대표들이 공동선언문을 발표해 최후통첩을 보냈고, 반대 시위는 4월 대선을 앞두고 절정에 달했다. 학생들은 교련 강화가 선거 기간 동안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묶어두려는 의도라고 봤다. 이 투쟁은 같은 해 광주대단지 사건, 실미도 사건 등과 겹치며 박정희 정권에 누적된 정치적 부담을 안겼고, 10월 위수령과 이듬해 유신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한 장이 됐다.
참고 자료
- 나무위키 민주화운동대한민국
- 오픈아카이브 1970년대학생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