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대통령 선거 — 박정희 대 김대중
3선개헌으로 다시 출마한 박정희에 맞서, 신민당은 "40대 기수론"을 내건 김대중을 후보로 내세웠다. 김대중은 대중경제론·남북교류론 등 당시로서 파격적인 공약을 발표하며 선거 바람을 일으켰다. 1971년 4월 27일 치러진 선거에서 박정희가 94만여 표 차로 승리했지만, 김종필은 "600억 원을 선거자금으로 썼다"고 훗날 증언할 만큼 관권·금권이 총동원된 선거였다.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조차 "부정과 조직적 방해가 없었다면 김대중이 당선됐을 것"이라 인정했다.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가 이 선거에서 처음 본격화됐다.
관련 인물
세계는 같은 시기
- 닉슨의 중국 방문 — 미중 데탕트 (1972)
1972년 2월 21일 닉슨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저우언라이와 회담했다. 한국전쟁 이후 20여 년간 적대했던 양국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통해 관계 정상화 의지를 밝혔다.
중소분쟁으로 소련을 견제해야 했던 중국과, 베트남전에서 빠져나오며 소련을 봉쇄해야 했던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박정희는 닉슨에게 직접 서신을 보내 방중 시 한국 문제가 사전 협의 없이 논의되지 않도록 요청했다.
참고 자료
- 민주화운동사전 1971년대선총선
- 나무위키 제7대대통령선거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같은 무렵의 사건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