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사건 — 조봉암 체포
1958년 1월 13일 서울시 경찰국은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간부들을 평화통일 구호와 간첩 접선 혐의로 체포했다. "사회주의 제도로 정부를 변란하려 했다"는 혐의였지만, 실제로는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216만 표를 얻어 이승만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떠오른 조봉암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이었다. 2월 20일에는 육군특무부대가 양이섭(양명산)이라는 인물을 통해 조봉암의 간첩 혐의를 추가로 발표했는데, 이는 훗날 협박과 회유로 만들어진 허위 자백이었음이 드러난다.
관련 인물
세계는 같은 시기
-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와 헝가리 혁명 (1956)
1956년 2월 흐루쇼프가 소련공산당 20차 대회에서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폭압을 비판하는 "비밀연설"을 했다. 이 해빙 분위기에 고무된 헝가리에서 10월 반소 봉기가 일어났지만, 소련군이 무력으로 진압했다.
스탈린식 통제에 대한 회의가 공산권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제기된 첫 사례로, 동구권 곳곳에 비슷한 동요를 낳았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진보당사건
- 오픈아카이브 조봉암과진보당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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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무렵의 사건
인물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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