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 다부동을 지킨 간도특설대 출신 장군
국군 제1사단장 백선엽은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 저지선인 다부동에서 8월 초부터 약 한 달간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막아냈다. 다만 이는 백선엽 단독의 전과가 아니었다 — 8월 중순부터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이 미 27연대(마이켈리스 대령)와 23연대를 다부동에 증파해, 1사단은 유학산·수암산 등 좌우 고지를, 미군은 도로와 계곡("볼링장") 축선을 맡는 한미 협동 방어전으로 전투가 진행됐다. 이 전공으로 그는 32세에 한국군 최초의 대장에 올랐고, 오늘날까지 "6·25전쟁 영웅"으로 기려진다.\n\n다만 그의 전공 규모를 둘러싼 논란도 실재한다.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 전체는 240여 km에 걸쳐 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총 8개 사단이 지켰고 1사단은 그중 하나였다. 예비역 장군 박경석 등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30여 년간 지낸 백선엽이 그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전공을 과장하고 다른 지휘관들의 활약을 상대적으로 축소했다고 비판해왔다. 이에 대해 8월 하순 북한군이 병력 일부를 다른 전선(영천)으로 돌리기 전까지 1사단이 단독으로 북한군 3개 사단급 공세를 상대했다는 반론도 있어, 전공의 정확한 규모는 여전히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다.\n\n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이력이 함께 있다 — 일제강점기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1943년부터 광복까지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며 항일 무장세력(동북항일연군·팔로군 등) 토벌 작전에 참여했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는 생전에 "독립군과 직접 교전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부대 자체가 항일세력 토벌을 목적으로 창설된 조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되지 않는다. 2011년 정부가 그에게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5성 장군) 계급을 추대하려 했으나 이 전력이 발목을 잡아 무산됐다. "전쟁영웅"과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한 인물 안에 공존하는, 한국 현대사의 굴절을 보여주는 사례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년 보고서
- 위키백과 백선엽
- 경향신문 백선엽의그늘(2020.7.12)
- 나무위키 백선엽/사건사고 및 논란(박경석·서상문 비판 및 반론)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6·25 결정적 전투들 ② 다부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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