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암살

1949년 6월 26일 · 서울 (경교장)

1949년 6월 26일, 김구는 자택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암살됐다. 안두희의 단독 범행으로 발표됐으나, 배후를 둘러싼 의혹은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다 — 안두희는 사건 후에도 군의 보호를 받으며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군에 복귀했고, 1992년 그는 특무대장 김창룡의 사주를 받았다고 증언했지만(증언은 이후 여러 차례 번복돼 신빙성 논란이 있다) 결국 1996년 한 시민에게 살해되기까지 진상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1995년 국회 조사보고서는 단독 범행이 아닌 군부 내 서북청년단 세력과 고위 장성들의 조직적 개입으로 결론 내렸다. 임시정부를 이끌며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분단을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북협상을 시도했던 김구의 죽음은, 통일 정부 노선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패배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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