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암살 — 권력 기구의 사병화와 그 종말

1956년 1월 30일 · 서울 (안양 인근)

일제강점기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조직을 색출했던 김창룡은 해방 후 전향해 특무대장으로서 이승만의 핵심 측근이 됐다. 그는 여순사건 직후 고문에 의한 자백만으로 좌익 군인 수천 명을 색출하는 숙군(肅軍) 작업을 주도했고(이 과정에서 박정희도 처형 위기에 몰렸다 구명됐다), 1949년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연행되자 그를 만나 격려했다는 증언이 1992년 안두희 본인의 입에서 나왔다(증언의 일관성은 논란이 있다). 1952년에는 부산 금정산에서 사형수에게 인민군 복장을 입혀 사살한 뒤 공비로 조작한 사건이 그의 소행으로 지목된다. 1956년 1월 30일 그는 출근길에 부하들의 총탄에 살해됐다. 이승만은 그를 애도하며 최초의 국군장으로 장례를 치러줬고, 그는 현재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돼 있다 — 그가 보호했던 암살범의 희생자인 김구의 모친 묘소 인근이라는 사실이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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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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