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하우스만 — 미군 고문관의 그림자 권력
미군 대위 제임스 하우스만은 1946년 한국에 파견된 이후 일개 고문관 신분을 넘어 한국군의 인사·작전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박진경 중령과 절친한 사이였고, 김익렬이 해임된 뒤 딘 군정장관에게 박진경을 9연대장 후임으로 추천한 인물로 지목된다. 여순사건 진압 당시에는 토벌사령관의 명령에 반하는 지시까지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직접 밝혔으며, 진압작전 개념("찾아서-고정시킨 후-싸워서-끝낸다")을 설계했다. 박진경 암살범 문상길의 처형 직후에는 쓰러진 시신에 권총을 난사했고, 민간인 총살을 문책하는 미국 대사에게 "몇 달 전엔 200명 죽이는 것도 보통이었는데 20명이 무슨 문제냐"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1981년까지 한국 정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1961년 5·16과 1980년 신군부 집권을 미국 정부에 설명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제임스하우스만
- 국사편찬위원회 김득중여순사건과제임스하우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