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 훙커우공원 의거
예산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치다 상하이로 망명한 윤봉길은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입단해 혈서로 선서문을 썼다. 일왕 생일인 천장절과 상하이사변 전승 기념식이 함께 열린 4월 29일, 그는 훙커우공원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육군대장을 비롯해 일본 수뇌부를 살상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그해 12월 일본 가나자와에서 순국했다. 이 거사로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고, 임정은 비로소 독립운동의 중심기관으로 다시 설 힘을 얻었다.
왜 일어났나
임시정부는 자금도 사람도 바닥나 있었고,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만들어 의열 투쟁으로 존재를 알리기로 했다. 그해 1월 이봉창의 도쿄 의거가 있었고, 상하이사변으로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한 뒤 4월 29일 훙커우공원에서 천장절과 전승 기념식을 열었다. 윤봉길은 물통과 도시락 모양 폭탄을 들고 들어가 단상에 던졌다.
무엇이 달라졌나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이 죽고 여러 요인이 중상을 입었다. 장제스가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 한 일을 조선 청년 하나가 했다고 말했고, 중국 국민당이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해 뒤의 광복군 창설로 이어진다. 임시정부는 일본의 추적을 피해 상하이를 떠나 옮겨 다니게 되었다. 윤봉길은 그해 12월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되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윤봉길
- 우리역사넷 만주사변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인물 페이지
이 사건은 개항기·일제강점기 지도(1876~1945)의 사건입니다 — 개항기·일제강점기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