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총파업

1930년 1월 13일 · 원산

1929년 1월부터 4월까지 원산에서 노동자 2,200여 명이 참여한,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노동쟁의가 벌어졌다. 발단은 1928년 9월 영국인 소유 문평 라이징선 석유회사의 일본인 감독 고타마가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이었다. 원산노동연합회를 중심으로 80일 가까이 총파업이 지속됐고, 일본군 제19사단 병력이 시내에 무장 행진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본인 우익단체 국수회가 폭력배를 동원하는 등 경찰·군·자본이 한편이 되어 파업을 압박했다. 4월 1일 노동자 일부가 어용단체 함남노동회를 습격한 것을 빌미로 경찰은 원산노련 소속 노동자 40여 명을 검거했고, 결국 4월 6일 노동자 측의 패배로 파업이 종결됐다.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다수는 재취업을 거부당해 실업 상태에 빠졌다. 끝내 요구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노동자가 조직적 단결로 일제와 자본에 맞선 역량을 증명한 투쟁이었다. 이후에도 1931년 평원고무공장 파업처럼 탄압은 계속됐고, 1931~1935년 사이 체포된 노동조합 활동가는 1,759명에 달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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